[역경의 열매] 손봉호 (9) 가정교사를 머슴처럼 취급… 자기 아들에게만 고깃국

입력 2023-04-28 03:04
주택 지붕 아래 과외 수업을 홍보하는 광고판이 걸려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필자도 한동안 입주 과외를 하며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인물과사상사 제공

다른 집보다 특별히 더 가난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집도 역시 빈농이라 중학생이 된 동생과 나의 학비와 하숙비를 모두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좀 넉넉한 집 외동아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가정교사가 되어 그 집에 들어가서 숙식을 해결했다. 아마 우리나라의 최연소 고학생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던가 한다.

부잣집 외동아들과 같이 지냈으니 자취나 하숙보다 더 편하게 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학생도 나중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니 공부를 못하는 편이 아니었고 따라서 가르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가 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매우 가깝게 지낼 정도로 그와 같이 지내는 것에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다만 그 집 주인 부부는 악하지는 않았지만 교양 수준이 좀 낮았다. 식사 때는 나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겸상했는데 음식 내용이 서로 달랐다. 예를 들어 자기 아들에게는 고깃국을 주고 나에게는 나물국을 주는 것이었다. 가정교사를 한 급 낮은 머슴처럼 취급한 것이다.

물론 서러웠다. 지금까지 그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런 대우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분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좀 못 배워서’ 그렇다고 이해하고 용서했다. 그분들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다가 벼락부자가 된 분들이라 평소에도 그들의 언행이 그렇게 존경스럽지는 않았다.

가끔 그때를 돌이켜 보면서 그때 내가 참은 것은 화를 내 밥상을 뒤엎어버리고 뛰쳐나가 봤자 어디 갈 때도 없었으니 무의식적으로 비겁해졌던 것이 아닌가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뒤에도 그분들과 그 아들에 대해서 한 번도 미운 감정을 가져 본 일이 없고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늘 유지한 것으로 보아서 그런 해석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역시 교회에서 배우고 얻은 그리스도인의 교양과 어렸을 때부터 남을 배려하고 예의와 체면을 중요시하신 부모님의 가정교육, 그리고 그런 교양과 가훈에 대한 나의 자부심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그리스도인은 교만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자존심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 소중한 교훈이 된 것은 당연하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대우하지 말자.” 나아가서 “어떤 사람도 무시하지 말고 차별대우하지 말자”는 것이다. 가끔 다른 사람에게 큰 고통을 가하거나 좀 지나치게 위선적인 사람을 보면 인간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무시하진 말자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차별대우를 받으면 서럽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