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섬나라 피지에 사는 라비니아 맥군(70) 할머니는 매일 해변에 나가 낡은 고무 타이어를 쌓는다. 맥군 할머니는 “(해수면 상승은) 아무도 막을 수 없겠지만, 이렇게 임시로 만든 해벽(海壁)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주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평양 섬나라들은 국가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미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무인도들도 있다. 피해 국가들은 ‘국가 소멸’을 막기 위해 범지구적인 탄소저감 대책이 필요하다며 호소하고 있다.
26일 유엔대학 환경 및 인간안보 연구소가 발간한 세계위험도지수(World Risk Index)에 따르면 전 세계 181개국 가운데 해발고도가 낮은 오세아니아 국가들이 ‘극한 자연현상에 대한 높은 노출’로 인한 위험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누아투, 솔로몬 제도, 통가가 1~3위를 기록했다. 파푸아뉴기니(9위), 피지(14위), 키리바시(19위)도 순위권에 올랐다.
위험도는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평균 해발고도가 2m에 불과한 키리바시는 이미 2개 섬이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수시로 바닷물이 들이쳐 담수를 오염시키고 주택과 논밭을 파괴하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 아노테 통 전 키리바시 대통령은 지난 19일 해수면 상승 피해 문제로 호주 정부를 상대로 호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토러스해협 사이바이섬 원주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투발루에서는 국민 1만1000여명 중 2000명이 고향을 떠나 ‘기후 난민’이 됐다.
솔로몬 제도에서도 이미 최소 5개 무인도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에 잠긴 것으로 조사됐다. 침수가 진행 중인 섬 중 누아탐부섬 등 2개 섬에서는 일부 마을이 통째로 바다로 쓸려나갔다. 2015년 섬나라 투발루에 찾아온 사이클론 ‘팜’은 투발루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하는 피해를 끼쳤다. 지난 3월 바누아투에서도 사이클론과 폭풍이 연달아 발생해 큰 피해를 낳았다.
이슈&탐사팀 김지훈 이택현 정진영 이경원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