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으로 적자 규모가 1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반등 전망이 불투명해서다.
SK하이닉스는 1분기에 매출 5조881억원, 영업손실 3조4023억원을 거뒀다고 26일 공시했다. 분기 기준으로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최대 규모의 적자다. 지난해 1분기 대비 매출은 58% 감소했고, 2조8638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4분기의 영업손실(1조8983억원)을 더하면 두 분기의 영업손실이 5조원을 넘어선다.
주요 고객사의 재고가 쌓여있고 경기침체로 IT기기 판매가 둔화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줄었다. SK하이닉스는 “D램의 경우 전 분기 대비 약 20%의 출하량이 감소했고, 평균판매가격(ASP)은 10% 후반대의 하락률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낸드플래시는 출하량에서 10% 중반대의 하락을 보였고, ASP하락률은 10% 정도였다.
메모리 반도체 불황이 장기화하면 올해 SK하이닉스는 2012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기준 적자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최악 상황을 가정하면 적자 규모는 10조원에 달할 수 있다. 관건은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언제 바닥을 찍고 회복하느냐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부사장)는 “모든 공급업체가 감산에 돌입했고 이에 따른 영향이 2분기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안에 재고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진정세로 접어드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감산을 선언한 이후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들어 고객사로부터 공급 안정성에 대한 문의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에 두고 판매에 집중해 올해 하반기에 매출 반등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특히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의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DDR5 128GB의 고용량 제품은 지난해보다 6배 이상,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50% 이상 매출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 확대는 향후 5년간 최대 40%, D램과 낸드필래시는 금액 기준으로 30%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설비투자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를 지난해의 50%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다. 다만 첨단 메모리 제품의 경우 투자는 지속한다. 이와 함께 기존보다 원가 경쟁력이 높은 공정을 통해 10나노급 5세대(1b) D램, 238단 낸드 등의 양산 준비에 자금을 투입한다. 반도체 시황이 바닥을 찍고 반등할 때 실적이 빠르게 회복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의 운영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등 중국 공장의 불확실성이 깊어지는 상황에 대해 “장기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시장 수요, 공장 운영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향후 중국 내 공장 운영계획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특별하게 중국 공장 운영에 변화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