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 전담지원기관, 2년 만에 큰폭 감소

입력 2023-04-25 04:07

2021년 ‘학교폭력(학폭) 미투 사태’ 이후 135곳으로 늘었던 학폭 ‘피해자 전담지원기관’이 2년 만에 29곳으로 대폭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최근 학폭 대책과 함께 발표한 ‘피해자 전문지원기관’ 303곳 역시 알맹이 없이 숫자만 부풀려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303곳 대부분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가정형 위(Wee)센터’, ‘심리상담지원기관’들로 기존 업무에 학폭 관련 업무를 추가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24일 국민일보가 교육부에서 발간한 ‘학폭 사안처리 가이드북’ 최근 5년치를 분석한 결과 2021년까지 소개됐던 피해자 전담지원기관이 지난해부터 자취를 감췄다. 피해학생 보호·지원을 위한 외부 기관 프로그램 소개도 함께 없어졌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조정실 회장은 “‘정순신 사태’처럼 큰 사건이 터지면 늘 땜질식 정책이 나온다. 2년 전 학폭 미투 사건 직후에도 학폭 전담기관이 갑자기 늘었었다”며 “피해학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병·의원들에 갑자기 전담기관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숫자를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대신 ‘전문’지원기관을 학폭 피해자를 위한 기관으로 소개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문지원기관과 전담지원기관의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 전문기관에서는 피해 학생뿐 아니라 다른 학생도 지원한다”며 “이 기관들은 각 시·도 교육감이 지정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학폭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학생이 이런 복합적 성격의 기관을 찾았다가 또 다른 학폭 가해학생과 만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점이다. 학폭 피해를 경험한 한 여학생(14)은 “학교에서의 은근한 학폭과 따돌림을 견딜 수 없어 전문지원기관을 찾아갔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 있는 곳이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는 현재의 학폭 전담지원기관을 29곳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이 수치 역시 불투명하다. 명칭 등을 묻는 질의에 ‘특정 기관의 상업적 홍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꺼렸다.

학가협 측은 온전히 피해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은 전국에 단 4곳 밖에 없다고 했다. 그마저도 안내나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다. 국내 유일의 피해학생 전담 기숙형 기관인 해맑음센터의 경우 이곳을 거쳐간 피해학생이 335명 되지만, 학교나 정부 안내를 통해 입소한 학생은 없다.

해맑음센터 관계자는 “학폭 피해학생을 위한 공간을 찾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학폭 심의위원회 측에 전담지원기관 안내 내용을 포함해 달라는 요청을 수년째 하고 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라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