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선 예미역에서 내려 차량 한 대 겨우 지나가는 좁은 시골길을 25분쯤 달리면 도착하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이 마을에 낯선 외지인을 품는 동강교회(이충석 목사)가 있다. 장엄한 백운산이 둘러싸고 있고 마음까지 맑게 해줄 것 같은 동강이 흐르는 산골 마을이다.
지난 19일 방문한 교회에는 마침 10여명의 교인이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자 대여섯명이 남아 ‘우쿨렐레’를 배웠다.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유일하게 북적이는 곳이 바로 교회였다.
우쿨렐레 강사는 도시에서 음악을 공부한 김연옥(64) 권사다. 김 권사는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건강을 위해 경치 좋은 이곳에 정착했다”면서 “시골에 오니 마땅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 우울해졌는데 그때 동강교회에 출석하며 마을에 정을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동강교회 성도 대다수는 그와 같은 귀촌인들이다. 귀촌인은 농사로 생계를 꾸리는 게 목적인 귀농인과 달리 은퇴 후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시골마을로 이주하는 이들을 말한다.
15년간 쌓은 신뢰로 세운 교회
교회가 세워진 건 2007년이지만 이충석(58·사진) 목사는 1993년부터 마을과 연을 맺었다. 이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에 다니던 시절 낙도선교회로부터 강원도 순회 선교사로 파송 받은 뒤 마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오자마자 바로 전도부터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잘 데가 없으니 방 하나만 빌려주시면 농사를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신뢰를 쌓았죠. 주민들이 교회에 다니진 않아도 축복해준다고 하면 좋아하셨어요. 집집마다 방문해 짧게 성경 말씀 읽고 기도부터 해 드렸죠. 교회부터 개척했다면 분명 밀어내려 했을 겁니다.”
서툴던 농사일이 손에 익을 무렵 주민들이 “그렇게 돌아다니지 말고 어디 집이라도 한 채 얻어 목회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 목사는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창립 예배를 드리던 날 주민들은 마치 오랜 친구 집들이에 오는 것처럼 화장지와 주방세제를 들고 교회에 왔다. 첫날 27명이 교회에 등록했다.
“그동안 예배당 없이 사역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계셨던 거였어요. 선교사 시절이 바로 신뢰를 얻는 시간이었던 셈이죠.”
교회 설립 후 주민과 농사를 지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도시교회와 연결해 농산물 직거래도 했지만 마을의 인구 감소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입되는 인구는 없는데 어르신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때 이 목사의 눈에 들어온 건 귀촌인들이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 목사의 설교를 보고 감명을 받았거나 농산물 직거래를 하며 인연을 맺은 이들이 교회를 찾아 마을로 왔다. 기존 사역과 함께 귀촌 성도들의 정착과 적응을 돕는 일을 통해 새 희망을 그리고 있다.
“처음 교회를 세웠을 때 도시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이 시골에 올 것이라 생각하고 ‘귀농·귀촌 학교’라는 간판을 걸었었어요. 가끔 한두 가정씩 찾아오긴 했었는데 코로나19가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던 것 같아요. 지난 3년간 10여가정이 새로 등록했을 정도로 늘었어요.”
귀촌인 정착 사역으로 농촌에 새 희망
선정관(59) 권사는 산골 마을 8개월 차다. 선 권사는 “여기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었더니 주변에서 ‘동강교회 목사님을 찾아가라’고 하더라. 목사님이 지낼 곳도 소개해 주시고 블루베리 농사일까지 연결해줬다”고 말했다.
귀촌인과 원주민을 이어주는 것도 이 목사의 몫이다. 심정순(75) 권사는 “오래된 생활 습관 때문에 원주민들과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목사님이 주민과 오래 교제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잘 해주셔서 지금은 모두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 토박이들의 반응도 좋다. 이곳이 고향인 서영란(47) 집사는 “새로 오신 분들 덕분에 조용하던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겼다. 교회에서 악기를 배우고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는 것도 그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즐거워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부터 성도들과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귀촌 성도들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성도들과 함께 인근 군인교회와 개척교회 예배당을 지어줬고 이달부터는 매달 한 차례 낙도를 방문해 선교할 예정이다. 성도들은 목공이나 미용 기술 등 자신들의 장기도 선교를 하며 십분 발휘한다. 중·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은여울학당’도 준비하고 있고 교인들과 함께 동강변을 달리는 마라톤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우리교회는 마치 이민교회 같아요. 전국에서 다른 정서를 가진 성도들이 모여있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함께 살면서 자신의 달란트를 다른 이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돕는 게 우리 교회의 역할입니다. 앞으로 시골을 찾는 인구는 더 늘어날 겁니다. 그들을 위한 사역이 농촌교회에 새로운 도전과 희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선=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