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 ○○○과 계약했는데 사기일까요. 저도 당한 건가요?” 전세사기 논란이 불거진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세입자들이 참여한 카카오톡 공개 대화방에 지난 주말 내내 비슷한 문의가 자주 올라왔다. 전세사기가 확산하면서 자신도 혹시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문의 글로 이어진 것이다.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세사기에 기존 세입자뿐 아니라 예비 세입자들 사이에서도 전세 공포가 번지고 있다. 세입자들은 혹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까 임대인 이름 중 자음 초성만을 언급하며 피해 여부를 확인한다. 또 임대인이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처법을 묻기도 한다. 공개 대화방에서는 경찰 수사관 연락처와 함께 신고 절차 등도 공유된다.
계약 현장에서도 ‘전세 포비아’ 현상은 쉽게 감지된다. 동탄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중개업자는 23일 “매물을 안내하기도 전에 여러 명의 임대인 이름을 얘기하면서 그 사람들이면 계약을 안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전세사기가 불거지지 않은 지역도 세입자 불안은 마찬가지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전세 계약이 만료됐지만 연장하지 않고 월세로 전환했다. A씨는 매달 부담해야 하는 월세가 아깝기는 했지만 대출 이자를 낸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자도 “뉴스 때문에 걱정되니 연락하는 세입자들이 많다”며 “등기부등본을 볼 수 있냐고 하거나 월세까진 아니더라도 반전세도 되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전세사기 판별법’이 확산 중이다. 유형을 갭투자 사기, 신탁 사기, 대항력 악용으로 분류하고 등기부등본 읽는 방법을 공유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세입자들이 함께 대책을 궁리한다. 피해를 겪은 한 세입자가 극단 선택을 암시하자 걱정하는 댓글이 줄지어 달리기도 했다.
전세사기 공포는 부동산시장 지표로도 확인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과 2월 전세 거래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2.3%, 2.6% 감소했다. 반면 월세는 전년 동월 대비 25.8%, 30.4% 증가했다. 서울의 경우 올해 1분기 빌라(다세대·연립)의 전세 거래량은 1만4903건으로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