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38절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선생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주님은 표적을 보여 달라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다’에 사용된 ‘아포크리노’는 최후 법정에서 떨어지는 심판자의 선언을 의미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주님은 ‘예수를 믿는다’하고 모인 그들에게 “너희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선언하는 의도는 ‘너희들이 요나의 표적이 무엇인 줄 알았다면 너희가 표적을 구하는 신앙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가장 큰 안타까움은 진리를 구하는 대신 표적을 구하는 종교의 세속화다. 교회가 십자가 대신 보여줄 것이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회들이 그들의 예배당 안에서 목숨 걸고 추구하는 것이 기사와 표적이다. 그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인 인간의 실존은 그 자체가 기복이고 샤먼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는 그 존재의 양식 안에 자연스럽게 찾는 것이 ‘복’이다. 그리고 그 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행동양식을 ‘샤먼’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복은 ‘예수 그리스도’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복은 예수 그리스도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요나보다 더 크신 창조주이시면서 죄인들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요나의 표적은 기사와 표적을 요구하고 기복과 샤먼에 물든 현대교회를 향한 서슬 퍼런 양날의 검이다.
요나의 표적은 예배당에 출석한 교인이 아니라도 그 누구라도 한번 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난 구약의 선지자다. 그리고 그는 당시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자 왕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그 땅에 살고 있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나 예수 믿어요, 나 십자가 알아요, 나 4대째 모태신앙입니다, 나 목사요, 장로요, 선교사입니다”라고 자신의 명함을 내어놓는 사람들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나 좀 살려주세요”하고 외치는 신앙인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신칭의 복음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경건하지도 거룩하지도 않는 나를 하나님이 의롭다하심은 내안에서 나오는 그 절망의 탄식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망의 몸에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러므로 교회가 말하는 복은 복의 주체이신 그리스도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하나됨이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죄 사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는 돈, 명예, 인기, 권력은 무엇인가. 그것이 멸망의 날에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처럼 사랑해서 내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건만 너희들이 지금 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하루 하루를 주신 것은 그 하루 동안의 삶이 복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또 그 복은 내 육체를 살찌우고자 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내 백성들을 향하신 긍휼의 손길이며 하룻밤에 말라버릴 인생들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한인수 목사(제주사랑밭교회)
◇제주 사랑밭교회는 오직 진리 안에서 세워지는 지체들을 섬기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