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박사가 동역자로 ‘찜’… 여성들에 무료 법률상담 57년

입력 2023-04-25 03:05
양정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장이 지난 21일 서울 양천구 사무실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오고 있는 여성을 위한 법률구조 사역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호소할 방법조차 모르는 여성들이 많던 때였다. 1965년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법대 학장이자 국내 최초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1914~1998) 박사는 졸업을 앞둔 한 학생을 눈여겨 보다 동역을 제안했다.

양정자(79)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상담원) 원장은 그렇게 이 박사가 세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들어가 한평생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양 원장은 이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원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21일 서울 양천구 상담원에서 만난 그는 “남편이 아내를 죽이면 집행유예,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법정 최고형이 나오던 시대에 일을 시작했다”며 “여성들이 억울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의 삶엔 이 박사가 깊게 배여 있다. 이 박사는 이혼 여성 재산분할청구권 인정 같은 일에 앞장섰던 여성 인권 운동가였다. 1952년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에 지원했으나 여성이라는 편견에 야당 국회의원이던 남편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반감이 더해지면서 결국 변호사가 됐다.

“여성이 변호사가 됐다고 하니 같은 여성들이 기뻐하면서 자기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두세 시간씩 같이 울면서 듣고 돕다 보니 찾아오는 이들도 미안한지 달걀 하나라도 싸 들고 왔다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가져올 게 없으니 상담도 하지 못했나 봐요. 박사님이 기도하던 중 여성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장소라도 만들어야겠다며 1956년 세우신 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33년간 일 한 후 1999년 상담원을 창립했다. 양 원장이 세운 상담원 역시 여성들의 편에 서서 법률 상담과 조정을 비롯해 소송 구조 활동을 무료로 하고 있다. 소송구조란 비용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무료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지난해까지 38만건이 넘는 무료 상담을 했다고 한다. 시민들을 위한 무료 법률교육도 진행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호주제 폐지나 가정법원 전국 확대에도 목소리를 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과 인권유공자상을 수상했다.

두 단체를 거치며 그가 상담한 사례도 15만건이 넘는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성들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맞벌이가 당연시되는 요즘도 집안일은 여성 몫이고 그나마 전업주부의 수고는 알아주지도 않죠. 전직 대통령 딸이 재벌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받은 위자료 액수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전통적으로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계속 바꾸고 깨려고 노력해야 해요.”

고령이지만 여전히 현직에 있는 그는 상담원을 찾는 여성들에게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타인도 당신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처음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 ‘내가 단세포동물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잘 먹고 잘 자라고 조언 합니다. 자신의 영육을 먼저 사랑하는 게 문제 해결을 위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유산 상속 중 여성들이 소외되는 일이 빈번하다보니 유산 관련한 상담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성경 말씀처럼 ‘얻어먹는 축복’보다 ‘주는 축복’을 누릴 것을 권한다고 한다. 그는 “그 무엇보다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가 진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매일 선과 악을 올바로 구분하고 억울한 사람과 약자를 돕게 해달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실제로 사무실 입구에 걸린 기도문은 그의 삶을 이끌어 온 나침반과도 같아 보였다.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 백성의 행복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광되게 하기 위해 우리의 신성한 직무를 겸손하고 지혜롭고 자비롭고 또한 비밀리에 완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상황이 어려울 때만 찾게 되는 상담의 특성상 상처가 회복된 뒤의 소식까지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한번은 길을 가는데 어떤 여성이 아는 척을 하더라고요. 남편이 부부 관계를 전혀 하지 않아 공교롭게 ‘아이 못 낳는 여자’로 손가락질 당하던 중 날 찾았던 분이었어요. 제 덕분에 이혼하고 새 삶을 찾게 됐다면서 새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보여주는데 참 기쁘더군요.” 아픔을 떨쳐낸 상담자들을 떠올리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남았다.

양 원장의 마지막 꿈은 상담원 소유의 사무실을 마련해 후배들이 임대료 걱정 없이 일하는 것이다. 훗날 후배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도 상담원에 기증했다. 스승인 이 박사의 삶이 그에게 귀감이 됐던 것처럼 그의 삶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길 바라는 소망도 크다.

“이제 나는 뒤에서 도와주는 거고 후배들이 앞장서야죠. 아버지께서 제가 하는 법률 구조 사역이 ‘인간에게는 도움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며 격려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은 생도 소외계층을 위한 동역자로 헌신하고 싶습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