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에서 룻기는 여성이 주인공인 두 권의 책(룻기와 에스더)중 하나이다. 히브리 성경에서 룻기는 잠언 뒤에 위치하는데 (잠언의) 마지막 장엔 ‘현숙한 여인’에 대한 송가가 나온다. 즉 룻기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여인’의 대표적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사사들이 치리하던 암울한 시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안으로는 지파 간 갈등으로 혼란과 분열이 일어나고 밖으로는 숙적 필리스틴인(Philistines)들의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했다. 사사기 마지막 절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21: 25)고 기록한다. 소위 사사 시대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그들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해 ‘진정한 왕(여호와)이 없는’ 정치, 종교적인 무정부 상태였다. 룻기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은밀히 일하고 계시는지를 잘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룻기의) 마지막 절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4:21~22)
사사 시대 말기 흉년을 피해 고향을 떠나 모압 지방으로 이주해 간 한 가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장인 엘리멜렉이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다. 그 후에 두 아들은 모압여자, 룻과 오르바를 아내로 맞이한다. 하지만 그 두 아들마저 자식없이 세상을 등진다. “그 여인(나오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룻 1:5) 두 며느리가 곁에 있었건만 나오미는 세상에 덩그마니 홀로 남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모압으로 이주한 지 십 년 만에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녀는 길 떠날 채비를 하면서 청상과부가 된 두 며느리에게 재혼을 종용한다. 근데 오르바는 시어머니와 작별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한사코 나오미를 붙좇았다.
룻의 결정은 매우 놀랍다. 나오미가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룻 1:13)라고 한탄하는데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남편을 통해 홍해 바다에서 보여주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능력의 사건을 전해 들었을지 모른다. 또한 그들에게 결국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여하튼 룻은 비탄에 빠진 나오미의 하나님을 믿고 따라나선다. 마침내 룻과 나오미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두 아낙네의 걸음으로 한 사나흘 걸리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어쩌면 별로 할 말이 없었는지 모른다. 성경기자는 두 여인의 귀향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 1:22) 생뚱맞게도 ‘보리추수 시작할 때에’라는 시기를 강조한다. 나오미는 알았을까? 그 보리밭에서 룻은 훗날 결혼하게 될 보아스를 만난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 때론 쓰라린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분을 신뢰하라!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라! 어두운 밤 구름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크신 긍휼이 이윽고 축복의 비가 …(※전체 내용은 더미션 홈페이지(themission.co.kr)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