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나 ‘예수의 생애’ 같은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관해 심각하고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는 유쾌하고 가벼운 에세이입니다. 두 사람이 과연 동일인인지 의심이 들 정도지요.
슈사쿠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가 지금까지 길러왔던 동물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첫 친구였던 만주견 ‘검둥이’로부터 시작해 개 고양이 원숭이 너구리 구관조에 이르기까지 그가 키우거나 만나왔던 여러 동물과의 이런저런 인연을 일체의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이 책에는 부모의 불화로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 말동무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던 ‘검둥이’와의 슬픈 이별과 관련된 진지한 단상에서부터 습관적으로 여자의 속옷을 물어오고 색을 밝히다 성병에 걸리기까지 하는 시바견 ‘먹보’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글에는 잘났건 못났건 잡종이건 순종이건 친절하건 무뚝뚝하건 그가 만나 왔던 모든 ‘있는 그대로’의 동물들, 더 나아가 식물까지를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바라보는 슈사쿠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미움과 혐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품성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슈사쿠는 주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숲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개의 눈과, 병에 걸려 자신의 손안에서 죽어가던 십자매의 눈에서 인간을 보는 예수의 눈과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눈을 떠올립니다. 개나 작은 새는 그저 개나 새가 아니며 그들의 눈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배후에서 슬픈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고, 멀리서 우리를 지켜주는 어떤 존재의 투영임을 깨닫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일상과 영원은 잇닿아 있으며 거룩한 것은 상스러운 것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는 기독교 신학자 이동영 교수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가 광야의 평범한 떨기나무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듯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원으로 향하는 도약판”도 우리의 일상 속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말끝마다 아멘 할렐루야를 붙이거나 24시간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일생을 통해 사랑하고 교감했던 여러 동물의 눈에서 예수님의 눈과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을 다시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던지는 슈사쿠야말로 진정한 영성가가 아니었을까요. 겉으로 보기에 종교적 색채나 경건함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 유쾌함과 애정으로 가득한 동물기야말로 참된 영성 일기로 불려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