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상 봤어, 자꾸 생각나” 자살유발정보, SNS 타고 확산

입력 2023-04-20 00:04

최근 서울 강남의 한 건물에서 투신한 10대 여학생 A양이 우울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극단적 선택을 사전 계획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살유발정보’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자살유발정보가 SNS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유통되면서 위기 상황에 놓인 이들을 더욱 벼랑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을 요구한 자살유발정보 건수는 1000건이 넘었다.

자살예방법에 따르면 자살유발정보는 자살동반자 모집이나 구체적 자살 방법 제시처럼 자살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거나 자살행위를 돕는 데 활용되는 정보를 뜻한다. 과거 특정 사이트 등 제한적으로만 접할 수 있던 자살유발정보가 최근에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SNS를 통해 순식간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자살유발정보는 통계적으로도 급격히 늘었다. 19일 방심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유발정보에 대한 시정요구 건수는 1046건을 기록했다. 2019년 771건, 2020년 725건, 2021년 713건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급증한 것이다. ‘ㄷㅂㅈㅅ’ 같은 극단적 선택을 의미하는 초성이 들어간 게시글, SNS에 “같이 떠나실 분은 쪽지 달라”고 써둔 계정 등이 시정요구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16일 투신한 A양 역시 최모(28)씨가 올린 극단적 선택 동반자 모집글을 보고 최씨와 접촉, 사고 당일 몇 시간을 함께 있었다. 최씨는 본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온라인 공간에서 일본 10대 투신자살 영상을 보게 됐다. 그러던 중 정신 상태가 불안해졌고, (커뮤니티에) 동반으로 떨어질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적었다”고 말했다.

방심위 관계자는 “트위터 등에서 동반 자살자를 모집하는 정보가 매우 많아졌다”며 “해외 사업자에는 정보를 내려 달라고 직접 요청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차단해 달라고 목록을 넘기는 기술적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자살유발정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양가감정을 갖고 끝까지 고민한다”며 “자살유발정보는 이런 사람들에게 ‘같이 간다’는 위안을 주면서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트위터 등 SNS는 직접 검색하지 않아도 탐색 알고리즘에 걸려 호기심으로 접하게 되는 이용자도 있다”며 “자살유발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의 목적은 관심이나 소통일 수 있지만, 그 목적과 다르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주변과 기관의 적극적인 도움도 강조했다. 백 교수는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현실 속 대인관계가 어려워 SNS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청년을 위한 비대면 상담인 ‘다들어줄개’처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이 더 많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