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각. 서울시 자립지원전담기관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교 졸업 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자립준비청년 A씨였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전 어떤 누구와도 연결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당직을 서던 정수지 자립지원2팀 주임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걸까. A씨는 그간 혼자서 끙끙 앓으며 묵혀왔던 얘기를 조금씩 털어놨다. 그는 “취업을 하고 싶어도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제겐 이런 정보들을 바로 알려주는 분들이 주변에 없을까”라며 막막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19일 만난 정 주임은 A씨와의 전화통화를 떠올리며 “야심한 밤에 주변 지인들이 아닌 이곳에 전화를 걸어 온 걸 보면 지금 이 친구가 많이 벅찬 상태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주임은 그날 A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그를 기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연계해줬다. 자립지원통합서비스 대상자로 선정하고, 취업과 관련된 교육 훈련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장학사업 정보도 전달해 신청하도록 했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기운을 북돋아주려 한다.
이 기관은 올해 들어 ‘자립준비청년 24시간 상담 전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 11일로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모두 62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첫 달 8건이었던 연락 건수는 2월 24건으로 3배 늘었다. 3월에도 23명이 상담 전화를 이용했고, 이달에는 지난 11일 기준 7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유형별로는 정보 문의가 28건, 지원 요청이 34건이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주로 전화를 걸어오는 시간대는 오후 6시 이후다. 100일간 걸려온 전화의 63%가량이 이 시간대에 몰렸다고 한다. 정 주임은 “자립준비청년들이 통상 학교나 회사를 다니고 있다 보니 전화하기 편한 시간대가 주말이거나 평일 오후 6시 이후인 것 같다. 그래서 저녁과 심야 시간에도 전화를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5일 이사비가 없다며 도움을 요청한 사례도 오후 6시 이후에 온 전화였다. 전화를 건 자립준비청년 B씨는 직장 퇴근 후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5년의 자립준비기간 만료를 2주일가량 앞둔 상황이었다. 상담을 진행했던 기관 관계자는 ‘회사에 다니면 이사비 정도는 있을 법한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직원은 “무슨 일을 하느냐”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요즘 상황은 어떻냐” 등의 질문을 이어간 끝에 B씨에게 채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는 처지였다. 자립준비청년에서 벗어나면 기관에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직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채무 변제까지는 어렵지만, 이사비 지원은 가능했다. 기관은 B씨를 자립지원통합서비스 대상자로 신청하고 50만원가량 되는 이사비를 제공했다. 재무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B씨를 위해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도 연결해 줬다. 이재유 자립지원 2팀장은 “자립준비청년들이 가장 막막하게 느끼는 점은 집을 구하거나 월급을 관리하는 방식같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만,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쉽게 알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가 관리·지원하는 자립준비청년은 약 1740명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500명 수준이었는데, 성인이 된 자립준비청년들이 취업 등을 이유로 상경하면서 수가 늘어났다. 이에 맞춰 해당 기관도 더 많은 청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현재 16명인 상담원을 올해 상반기 안에 24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청년들이 좀 더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현재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기관도 지리적으로 서울의 중심인 용산구 삼각지역 부근으로 옮길 예정이다.
기관의 목표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상대가 되는 것이다. 일부에서 혼용해 사용하고 있는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말도 여기서는 금기어라고 했다. 이 팀장은 “청년들은 아동이 아닐뿐더러 보호가 ‘종료’됐다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자립을 ‘준비’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 상담할 때도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 팀장은 전화를 걸지 말지를 고민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시설에서 나와 홀로 사회에서 지내면 누구나 외롭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럴 때 누군가 한 명 더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안심이 될 수 있다. 우리 직원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할 수 있지만, 우리가 최대한 친근하게 다가갈 테니 편안하게 연락해주면 좋겠다”면서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가 아닌 안부 전화도 괜찮으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수화기로 연결되는 친구나 가족 같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얘기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24시간 상담 전화(02-2226-1524)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열려 있다. 오후 6시까지는 상담원 모두가 전화를 받고,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는 당직을 서는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주말에도 오전 9시~오후 6시 운영하고 있다. 평일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걸려온 전화와 주말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걸려온 전화는 콜백을 통해 상담을 진행한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