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인 목사님·성도들 뒤에서 늘 숨죽이며 살아오다… ‘사모’라는 이름으로 하나돼 울고 웃었다

입력 2023-04-19 03:02
‘2023 사모리조이스’에 참석한 사모 500여명이 18일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에서 트로트 가수 류지광의 공연을 보며 야광봉을 흔들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사모님들 얼마나 힘듭니까. 보통 아내들은 그냥 자기 남편 욕도 하며 속 시원하게 사는데, 사모들은 어디 가서 하겠어요. 남편 욕하는 것은 엎드려 침 뱉기고 교회에 덕도 안 되고 계속 참을 수밖에 없어요. 주일 전날 남편이랑 싸워도 주일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웃어야지!”

사모들의 마음을 다 아는 듯, 이들의 상처를 웃음으로 풀어내는 소통 전문가 김창옥 교수의 강의에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김은호 목사) 그레이스홀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2023 사모리조이스’에 참석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모인 500명의 사모다. 대부분 처음 만났지만 사모라는 동질감으로 이들은 쉽게 친구가 됐다.

2003년부터 매년 열리는 사모리조이스는 접수 시작 후 바로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교단과 나이를 초월해 사모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돼 치유와 사랑,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재개된 이 행사는 ‘당신에게도 봄(春)’이라는 주제로 17일부터 2박3일간 열렸다. 첫날 개회식에선 ‘웨레스 오카리나 앙상블’과 가수 선예, 정원영이 부르는 뮤지컬 ‘루쏘’의 갈라 콘서트, ‘유쾌한 소통의 법칙’ 특강, 클래식 보컬 그룹 ‘유엔젤보이스’의 공연이 진행됐다.

18일엔 사모들 속내를 털어놓는 ‘우리들만의 이야기’ 시간이 있었다. 속 썩이는 성도, 남편과의 관계, 교회와 집을 잃고 눈물로 살아온 이야기 등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사연을 나눴다. 오후에는 트로트 가수 류지광의 공연을 비롯해 캘리그래피, 댄스테라피, 줌바댄스 등 다양한 선택 특강이 진행됐다.

행사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오륜교회 봉사자 200여명의 섬김이다. 이들은 지난 1월 준비위원회를 조직해 매주 회의하며 기도했다. 본당의 무대 세팅부터, 포토존 마련, 식사 준비, 숙소(5성급 호텔) 예약, 차량 운행 등 사모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자 애썼다. 늘 자신의 삶보다 목회자인 남편과 성도들을 위해 헌신해 온 사모들이 이때만이라도 편히 쉬고 재충전할 수 있게 했다.

김홍자(60) 높은뜻교회 사모는 “주변에서 사모리조이스에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줘서 왔다. 다채로운 공연을 관람한 것도, 좋은 호텔에서 자본 것도 처음이다. 늘 남편 목사님, 성도들 뒤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우리 사모들이 이곳에선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며 “사모들을 섬겨주신 오륜교회 성도들에게 감사드린다. 다른 사모들과 교제하며 도전받고 재충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륜교회 정송이 사모는 “사모들이 포토존에서 꽃과 함께 사진을 찍고 소녀같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사모가 행복하고 든든하게 서야 교회가, 성도가 행복하다. 사모리조이스를 통해 우리 사모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