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7박9일 일정으로 18일 유럽 출장을 떠났다. 재정 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하고 재정준칙 노하우를 배우기 위함이란다. 제도 입법화에 앞서 선진국의 경험을 참고하겠다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국내에선 재정준칙 논의를 2년 반이나 뭉개던 의원들이 뒤늦게 유럽 출장을 가서 뭘 얻어 오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기재위원장 등 여야 의원 5명은 27일까지 프랑스 스페인 독일을 들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만나 유럽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해법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일정도 있다고 한다. 이런 출장은 여야가 국내 재정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제도 개선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뤄져야 의미가 있다. 과연 그런가. 재정수지 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 이내로 묶는 재정준칙 관련 법안은 2020년 10월 국회에 제출됐다. 당시 여당이자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 확산을 들어 외면했고 현재는 ‘사회적경제법’과 재정준칙을 동시에 처리하자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정준칙을 강조하면서도 허구한 날 선심성 사업을 제안해 앞뒤가 다르다는 지적을 받는다. 양당 모두 재정준칙 도입 의지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여야는 대규모 나랏돈이 들어가는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지난주 국회 기재위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출장 전날 개정안이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었는데 여론의 반발로 보류됐다. 국내에선 재정낭비법을 처리하고 유럽으로 가 재정 절약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일정을 짠 셈이다. 황당할 따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과 튀르키예만이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았다.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고령화에 부채 증가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빠른 우리가 재정준칙을 등한시할 순 없다. 이왕 유럽에 간 거 의원들은 혈세 값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재정의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 5월 중 임시국회에서 재정준칙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출장의 진정성을 보여줄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