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교회·복지재단·지자체 ‘3각 돌봄 체제’… 기댈 언덕 돼 줘

입력 2023-04-19 03:06 수정 2023-04-19 13:37
강원도 속초시 사회서비스형 일자리에 참여한 신영숙(오른쪽) 어르신이 지난 7일 번영로 골목길에서 심임섭(가운데) 어르신에게 사흘치 우유를 전달하고 있다.

“올해로 90이야.”

나이를 숨기던 어르신은 실제보다 어리게 보는 사람들 말에 미소를 짓더니 나이를 밝혔다. 한국 나이로 90세인 심임섭 어르신은 지난 7일 강원도 속초시 번영로 골목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골목으로 들어온 차량에서 윤순이(71), 신영숙(68) 어르신이 내렸다. 그리고 차에서 봉투를 챙겨 들고 다가갔다.

신씨는 “오늘은 금요일이라 사흘 치 우유를 넣었다. 월요일에 뵙겠다”며 우유 3개가 든 봉투를 심 어르신에게 건넸다. 이 우유배달은 ‘나홀로’ 어르신이 많은 농어촌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농어촌 교회가 어떻게 함께 외로움을 돌볼 수 있는지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초고령사회’ 속초의 선택

속초시는 인구 8만3000명 중 65세 이상 인구가 1만7798명으로 전체 인구의 21.5%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다. 고독사 위험이 큰 독거 노인은 6000여명이나 된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지난 12일 “고독사가 없는 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고독사 제로’를 선포했다. 이를 위해 강원도가 2021년부터 시작한 ‘강원형 공공이불빨래방’사업을 신청했고 우유배달도 추진했다. 김성림 부시장은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어르신우유)’ 이사장인 호용한 목사에게 요청했더니 70가구에 우유를 평생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관계자가 독거노인에게 전달할 우유 배달처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

우유배달은 지난 3월 빨래방을 열면서 시작됐다. 배달되는 우유는 최대 90일간 상온 보관할 수 있는 멸균우유다. 지자체와 교회의 협업 효과는 확실했다. 우유는 ‘어르신우유’의 후원으로 제공되고 배달 인력의 인건비는 지자체가 감당한다. 노인 공공일자리 모델 중 하나인 사회서비스형을 통해 26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속초시 공모로 선정된 속초시니어클럽은 복지 노하우를 활용해 이를 운영한다. 안영란 복지사는 “우유가 쌓여 있고 인기척이 없으면 들어가지 말고 문을 두드리며 부르기만 하라고 했다”며 “안 좋은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어르신도 만족도는 모두 높다. 심 어르신은 “평생 살면서 우유 배달은 생각도 못 했다. 사람들이 찾아오니 좋고 우유도 마시니 좋다”고 말했다.

눈여겨 봐야 할 건 또 있다. 노노(老老) 케어다. 공익사업에 참여한 26명의 인원은 모두 60대 이상이다. 노노케어의 강점은 금호동경로당에서 만난 백금옥(76) 어르신과의 짧은 대화에서 나타난다. 백 어르신은 기자의 손을 잡자마자 “딸만 둘 있다”는 말부터 꺼냈다.

공익사업 참여자인 박상준(72·여)씨는 “우리는 남아선호 시대에 살았다. 아마 어르신은 아들이 없어 구박을 받았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고 풀이했다. 의외의 효과도 봤다. 공익사업 참여자들 얘기다. 오후조 조장인 이재석(71)씨는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그분들 나이가 되니 이해하게 되고 하나라도 더 도우려고 한다. 그들을 도우면서 삶의 기쁨도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로움 건져올리는 ‘3각 돌봄 체제’
지난 2월 이랜드복지재단과 전남 고흥군 희망복지지원단 관계자 등이 고흥군청 청사에서 위기가정 사례회의를 하는 모습. 이랜드복지재단 제공

성도도 재정도 충분치 않은 농어촌교회는 외로움 돌봄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랜드복지재단은 바로 지역 교회가 돌봄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명 ‘돌봄 인큐베이팅’ 사례를 보여준다.

이랜드복지재단은 2019년부터 복지 자원이 취약한 곳을 돕기 위해 지자체와 협력하고 있다. 현재 협약을 맺은 지자체는 17곳이다. 지난해부터 대형교회와 지원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있다. 분당우리교회 광염교회 한국중앙교회가 참여했다. 지자체는 행정 조치를 취하고 재단은 협력관계에 있는 대형교회를 통해 재정 등을 뒷받침하면 농어촌교회는 지역 내 위기가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이랜드복지재단에 전화가 걸려왔다. 지역네트워크인 전남 고흥군청은 40대 초반의 미혼 남성이 살 집을 구한다는 얘기를 했다. 도움을 요청한 건 외봉면 외봉마을의 강성교회 류은희 목사였다. 류 목사는 성도를 통해 2021년 12월 산속 텐트에 사는 A씨를 봤다. 부모의 이혼과 조부모의 사망으로 의지할 곳이 없던 그는 이 집 저 집 떠돌며 일해서 받은 돈으로 살았다. 분노가 커졌고 결국 산으로 들어갔다.

류 목사는 “나는 따뜻한 곳에 있고 하나님이 맡기신 양은 추운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A씨를 돕게 된 이유를 전했다. 면사무소에 도움을 청했더니 경제활동이 가능한 나이라 지원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다시 군청을 찾았다. 그렇게 이랜드복지재단·분당우리교회와 연결됐다.

분당우리교회는 A씨의 월세 보증금을 지원했다. 그 사이 류 목사는 대출을 받아 평당 4만원 하는 농지를 사고 컨테이너도 샀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 A씨는 일도 시작했다. 농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확의 기쁨을 경험했고 막노동을 하며 땀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 사이 세례도 받았고 교회 집사도 됐다.

류 목사는 “A씨는 자립했고 분노의 마음도 사라졌다.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그의 말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지자체도 재단과 대형교회 지원이 든든하다. 고흥군청 노향아 주무관은 이를 ‘기댈 언덕’이라고 표현했다. 노 주무관은 “도움 줄 곳은 많은 데 도울 방법이 없어 늘 안타까웠는데 기댈 언덕이 생기면서 일하는 재미가 생겼다”고 했다.

속초=글·사진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