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예수의 비유] <6>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입력 2023-04-18 03:07
포도와 가죽부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여 깁지 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여 기우면
기운 생베 조각이 낡은 옷을 잡아당겨
옷이 더욱더 크게 찢어진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지 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으면
새 포도주가 낡은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는 못 쓰게 된다

생베 조각은 새 옷에 붙여 깁고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라
그래야만 옷이 그대로 보전되고
가죽 부대도 터지지 않는다

새것은 새것과 조화를 이루나니
낡은 것과 새것은 함께하지 못한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흘려보내고
새것을 받아들여 더욱 새롭게 되어라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터지지 않는다.

<해설> 혼인집의 신랑 비유에 이어 곧바로 소개된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의 비유다(마 9:16-17; 막 2:21-22; 눅 5:36-38). 여기서 ‘생베’(헬, 아그나포스)는 한 번도 세탁된 적이 없는 새 천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을 물에 빨아 말리면 크기가 줄어든다. 따라서 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 대고 꿰매면 생베는 오그라들어 낡은 옷을 잡아당김으로써 기운 효과는 전혀 없다. 오히려 해어짐만 더할 뿐이다.

새 포도주도 마찬가지다. 새 포도주는 강한 발효성이 있기에 그것을 신축성 없는 낡은 가죽 부대에 담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가 터져버린다. 여기서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는 새롭고 역동적이며 생명력 있는 ‘천국 복음’을 가리키고, 낡은 옷과 낡은 가죽 부대는 낡고 쓸모없는 ‘유대교의 오랜 전통과 관습’을 가리킨다. 이 둘을 한데 엮을 수는 없다.

김영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