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두고 죽을 순 없어 버텼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절규

입력 2023-04-18 00:07 수정 2023-04-18 00:11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한시적인 경매 중지를 촉구하고 있다. 17일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인 30대 여성 A씨가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전세사기 관련 사망자는 3명으로 늘어났다. 연합뉴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벌어진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33세의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된 최희섭씨는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기당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아이가 5살이었다. 아이를 두고 죽을 수 없으니 버티고 버텼지만, 아내에게 수도 없이 죽고 싶다고 했었다”며 악몽보다 더했던 2021년 7월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달에서야 떼였던 전세금 1억8000만원을 돌려받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덕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여전히 신용불량자다. 2년 동안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한 탓이다. 그는 “전세금을 받기 하루 전까지도 삶이 내 삶이 아니었다”며 “사기당한 걸 알고 나서부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나마 저는 전세금을 돌려받았지만, 전세금을 받을 길이 없는 사람들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A씨(50)는 최근 극단적 선택이 연이어 일어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다. A씨는 “저도 내년 이맘때면 ‘죽네, 사네’ 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그는 집을 경매에 넘겨 직접 낙찰받는 게 목표다. 대출금 상환 만기일이 내년 여름이라 그나마 다른 피해자보다는 나은 편이다. 그래도 그는 “낙찰받을 때까지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하루하루 고통인 건 매한가지”라고 토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정부에서는 저금리로 전세금 대출을 지원해주겠다지만, 이미 대출을 끼고 있는 피해자들한테 또 빚내서 전세를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겠나”라고 비판했다.

사회 초년생인 30대 이모씨도 “‘빚투’(빚내서 투자)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은 정부가 나서서 채무탕감을 해주겠다면서 왜 정작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역시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씨는 사기당한 사실을 알게 된 직후 HUG 측에 피해 구제책이 있는지 알아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전셋집을 구해야만 저금리 대출을 해주는데, 여기에 또 일정 소득이 있으면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다 보니 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장생활 5년 동안 모은 돈이 한 번에 허공에 사라진 것, 원치 않는 유주택자가 된 게 저에게 가장 큰 피해”라고 답답한 듯 말했다. 그는 기존 대출 원리금을 매달 갚는 중이다.

전세보증보험에 들었고 대출도 모두 상환한 또 다른 이모(32)씨는 운이 좋은 경우다. 이씨는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상담사가 반드시 보험을 들으라고 했던 게 저를 구했다”며 “지금은 나왔지만, 피해자 단체 카카오톡방을 보면 대출 상환일이 임박해서야 사기당한 사실을 안 분도 있다. 그 방엔 너무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월세로 살고 있다”며 “부모님도, 저도 전세는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가현 정신영 백재연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