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재학 중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 김동현(41) 판사는 매일 아침 출근해 다른 판사들처럼 이메일을 확인하고 판결문을 작성한다. 기록을 눈으로 보지 못해 화면 글자를 소리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재판을 할 때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원고·피고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김 판사는 17일 “재판 중 (사건 관계자의) 표정 변화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인식 못 하는 데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면서도 “거짓말에 능숙한 이들의 말과 표정으로 선입견을 갖지 않는 장점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웃었다. 법원 판사들은 코로나19 유행기 당시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재판 당사자의 표정 변화 등을 보지 못해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김 판사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43회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시각장애인 법관으로서 경험과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던 2012년 의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좌절하지 않고 학업을 이어가 2015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고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 중이다.
김 판사의 법관 업무에는 전담 속기사 등 주변 도움이 필수적이다. 건물 도면을 확인해야 할 경우 3D 펜으로 덧대 그려 볼록해진 부분을 직접 손으로 만져 확인한다. 사진이나 동영상의 경우 속기사들에게 먼저 설명을 해달라고 하고, 궁금한 점은 대화를 하며 내용을 파악한다.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업무도 많다. 마우스로 눌러야만 작업이 가능한 문서 작업이나 휴가 신청, 재산 등록 등의 업무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는 “같이 근무하는 판사님들이 제 재산을 다 알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법원에서 장애인 지원 매뉴얼이 아직 잘 작동하지 않는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시각장애인 지인이 법원에 혼자 가도 되냐고 물어서 ‘법원 장애인 사법 지원 매뉴얼에 적혀 있는 것을 법원 가서 해달라고 하라’고 했다. 그런데 직원이 (잘 몰라서) 굉장히 당황했다고 한다”며 “매뉴얼을 잘 숙지하면 당황하지 않을 것이고, 잘 숙지하지 못했더라도 어떻게든 찾아서 해주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