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25)씨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지난해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타인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면서 불안증세가 시작됐다. 지난 2월 새벽 1시쯤 박씨는 순간 밀려오는 공허함으로 삶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1393 상담번호가 떴다. 20분가량 고민한 박씨는 용기를 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3분 정도 기다려봤지만 ‘지역번호를 입력하면 지역 정신건강 복지센터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나왔다. 박씨는 하릴없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17일 “고심 끝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원 연결조차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며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라 지역번호도 생각나지 않았고, 얘기하려던 마음도 사라져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가 2018년 12월부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을 24시간 운영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으로 자살 고위험자의 위기 신호를 놓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1393은 상담을 통해 위험 상황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구조 신호’로도 인식된다. 하지만 상담원 연결조차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393 응대율은 60%에 불과했다. 특히 상담 전화가 더 몰리는 새벽 시간대에 통화 연결이 더 어려운 상황이다. 복지부는 지난 14일 ‘제5차 자살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1393 전담인력을 확대하고 응대율을 2027년까지 90%로 높이겠다”고 제시했다. 현재 상담원은 52명이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응대율을 높이려면 최소 100명의 상담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기존 1393 상담원의 이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만 7명, 지난해 16명이 1393 상담직을 그만뒀다고 한다. 윤진 생명재단 지역기반사업부장은 “급여도 낮고 새벽 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 때문에 장기근속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특히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는 등의 악성 민원인도 있는데, 자살 위험군일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전화를 끊을 수도 없다. 상담원의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개월마다 계속해서 상담원을 선발하고 있지만, 2개월가량 교육을 한 뒤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투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자원봉사센터와 협업해 응대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상담원 인력이 확보될 때까지 자원봉사센터의 지원을 받겠다는 의미다. 자원봉사자는 비정기적으로 일을 하는 데다 1399 상담원보다 전문성이 낮아 상담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 부장은 “안정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1393 상담원 자체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