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돈봉투, 왜 300만원?

입력 2023-04-18 04:10

2008년 한나라당 7·3 전당대회를 앞두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낀 30대 남성이 고승덕 의원실을 찾아와 여직원에게 300만원이 든 노란색 돈봉투를 건넸다. 남성이 들고 있던 쇼핑백 크기의 가방 안에는 노란색 봉투들이 잔뜩 있었다고 한다. 돈봉투 안에는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명함이 있었다. 고 의원은 돈봉투를 다시 돌려줬다. 한동안 잊혔던 사건은 고 의원이 2011년 자신이 연재하던 경제신문 칼럼에 돈봉투 얘기를 썼고, 2012년 종편 방송에서 다시 돈봉투 얘기가 거론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놀란 한나라당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박 전 의장은 불구속기소 됐다. 뿔테 안경 남성은 박 전 의장의 보좌관 출신이었다.

최근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현역 의원들에게 뿌려진 돈봉투 금액은 300만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13년이 지났는데도 전당대회 의원용 돈봉투 액수는 300만원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왜 300만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선 국회의원 출신의 한 정치인은 오래전 사석에서 “개인적으로는 후원금이 300만원 넘어가면 부담이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300만원이 넘어가면 대가성이라는 인식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2010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서 ‘용전(用錢) 효과’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로비 자금 액수는 상대방의 생각보다 적어서도 안 되고 많아서도 안 되는 적절한 범위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당대회 후보를 돕는 국회의원에게 300만원은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성의 표시인 모양이다.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의원들도 300만원을 뇌물이라기보다 활동비나 격려금 정도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관행이란 이유로 무심코 받은 300만원이 패가망신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 당시 검찰은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가방 안에 있던 노란색 돈봉투들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았다. 윤석열정부 검찰은 그럴 것 같지 않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