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엠폭스(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1~5번째 사례는 해외유입 또는 관련 환자였지만 최근의 6~10번째 확진자는 모두 국내 감염으로 추정된다. 긴 잠복기 탓에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조용한 감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지역사회 전파가 상당히 진행됐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16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대구 거주 내국인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 엠폭스 양성으로 확인됐다. 이 10번째 확진자는 질병청 콜센터로 연락해 “엠폭스 검사를 받고 싶다”고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여행력이 없었지만 의심 증상이 확인되자 신고한 것으로 보인다. 질병청은 “확진자 발생 지역 의료진을 대상으로 신고·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밀접접촉(성·피부 접촉)을 통해 이뤄지는 엠폭스 감염의 특성상 역학조사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또 감염원과 익명으로 접촉하는 경우도 있어 전파 경로를 특정하기도 어렵다. 실제 전남에서 발생한 6번째 확진자 A씨의 경우 해외여행력이 없는 첫 지역사회 확진자였지만 감염원을 특정하지 못했다. 실제 드러난 감염자 규모보다 훨씬 많은 숨어 있는 감염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엠폭스의 전파력이나 전파경로만 본다면 차단이 어려운 병이 아니지만 역학조사가 원활하지 않다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지역사회에 전파가 상당히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잠복기가 최대 3주에 달한다는 점도 접촉자 파악에 장애가 되고 있다. 엠폭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도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엄 교수는 “(잠복기가 길어서) 어디까지 노출됐는지 모르고, 노출된 사람도 본인이 노출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다음 사람한테 또 전파를 시키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감염으로 보이는 6~10번째 확진자 사이 아무런 연관 고리가 없는 데다 지역도 전국 곳곳에 퍼져 있다는 점 등에 비춰 이미 유행에 돌입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주일 사이 5명이 확진됐고 지역을 보면 전남, 서울, 경기 등 전국 일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외여행력이 없는 지역사회 전파가 여러 군데 동시다발로 나타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유행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숨어 있는 숫자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겉으로 드러난 숫자의 몇 배가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접국인 일본에서 증가세를 보인다는 점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지난 11일 기준 9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일본과 지역적으로도 가깝고, 생활습관이나 전통적 관념도 비슷하기 때문에 일본의 발생 상황과 한국이 비슷한 규모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