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인간과 말

입력 2023-04-17 04:08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습득한다. 언어라는 것이 우리 내면을 구성하기 이전, 유아기의 정신을 기억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막스 피카르트는 “인간은 자신이 언어를 지탱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언어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고 썼다. 언어를 작업의 주된 재료로 삼는 작가로서 ‘언어 없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그 역시 언어로 사유할 수밖에 없기에 잘 되지는 않는다.

언어가 없는 동물에게는 과거와 미래 역시 희미한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은 인간에 비해 훨씬 더 현재를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감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과 예측에 따라 후회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타 생물종에 비해 높은 지능은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이자 저주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단순함을 복잡함과 교환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괴로워하게 됐다.

세대 간 언어 사용 차이가 미디어에서 화제가 될 만큼 현대의 한국어는 빠르게 변화한다. 한국어가 그만큼 살아 있는 언어라는 뜻일 것이다. 새로운 말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언어를 발명하며 그것으로 유희한다. 신조어가 한국어를 파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언어는 시대에 따라 새롭게 생성되고 사라지며 변화해 왔다. 우리가 언어로 사유하며 존재를 지탱하는 만큼 새로운 한국어가 많이 생성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역동적인 장소임을 의미한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백 년 전의 한국어를 들어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어가 사라질 것을 염려한 사람들이 목숨 걸고 남겨둔 육성 녹음본이라고 한다. 듣다 보면 지금과 비슷한 발음과 억양, 단어들에 놀라게 된다. 백 년 전은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언어의 수명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백 년 전의 사람들과 우리가 여전히 비슷하지만 다른 언어로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들에 의해 보존된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