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은 한국 정치의 시계를 수십년 거꾸로 되돌리는 사건이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21세기 정치판에서 1970~80년대 후진적 관행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이 된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대화와 타협이 단절된 불통 국회에서 충분히 확인되고 있지만, 돈봉투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개발도상국 시절의 고색창연한 그 어휘를 정치판에서 몰아내기 위해 우리는 정치자금법, 선거법 등 수많은 제도를 고쳐가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돈을 뿌려 표를 사는 행태가 민의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절감했기에 많은 이를 감옥에 보내가며 근절하려 발버둥 쳤는데, 이제 돈 정치 폐해에선 벗어났나 싶었던 시점에 국회 제1당의 수장을 뽑는 무대에서 돈봉투 망령이 되살아났다. 정치가 뿌리째 썩어 있음을 웅변해준다.
사건의 얼개는 드라마틱하다. 노출된 것만 90개 돈봉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2021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관석 의원이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에게 “(송영길 후보 지지세를 유지하려면) 의원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운을 떼자, 300만원씩 든 봉투 20개가 이정근 사무부총장(구속)을 통해 전달됐다는 것이다. 당시 송영길 캠프에 몸담은 의원과 보좌관 등 9명이 이런 식의 돈봉투 조달·배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은 300만원, 지역위원장은 50만~100만원, 캠프 실장급은 50만원이라는 기준도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이정근 부총장이 압수당한 휴대전화 등에 고스란히 녹음돼 있다는 이들의 ‘돈봉투 대화’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선되려면) 돈이 최고 쉬운 건데….” 그 쉬운 유혹을 위해 총 1억원에 육박하는 봉투가 마련됐고, 민주당 정치인 수십명이 몇십만, 몇백만원의 헐값에 양심을 팔았다는 것이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사건의 줄거리다.
송영길 전 대표를 비롯해 돈봉투 의혹에 연루된 대다수는 ‘386세대’로 분류된다. 이런 정치를 몰아내자며 개혁을 외쳤던 이들이 구태를 그대로 답습해 21세기 한국 정치를 오염시킨 꼴이 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해외 체류 중인 송 전 대표가 귀국해 조사받아야 할 사안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수사는 정치의 부패상을 드러내고 도려내는 작업이 돼야 한다. 진영 논리에 왜곡되는 상황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정치의 썩은 부위가 정치 공방에 덮이는 일이 없도록, 검찰 수사는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