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숙원사업 세운지구 개발 일환으로 신축된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고도 두 달이 다 되도록 공사를 이어가고 있다. 설계 오류와 부실 시공 지적을 무시하고 입주를 강행한 탓이다. 떠밀리듯 들어와 살게 된 주민들이 소음과 진동, 분진 등에 고통받는 동안 시행사, 시공사 등 관련자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사용승인을 내준 중구청은 ‘절차대로 했을 뿐’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국민일보가 최근 방문한 서울 중구 1000가구 규모 ‘힐스테이트세운센트럴’ 1단지는 올해 2월 말부터 입주민을 들인 아파트라는 사실이 무색하도록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 입구부터 엘리베이터와 각층 복도까지 건축자재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현장 근로자들이 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갔다.
공용공간인 4층 실외 정원에서 해당층 가구들은 거실을 비롯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한 입주예정자는 “이 상태면 여기 사는 사람은 동물원 원숭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며 혀를 찼다. 창문을 가리려고 임시방편으로 화분을 여러 개 줄지어 세워놨지만 실내가 들여다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시행사 관계자는 “4층 사생활 침해 문제를 사전에 발견 못한 건 인정한다”면서도 “설계 오류는 시공사가 공사현장에서 발견해 (시행사에) 알려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행사는 발주만 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시공사는 시행사 책임으로 돌렸다. 시공사 관계자는 “기본 설계는 모두 시행사가 했고 우리는 그 설계대로 지었을 뿐”이라며 “시행사의 설계 의도까지 판독하며 공사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는 “시공상 하자가 아닌 문제는 시행사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상한 설계’는 더 있다. 에어컨 실외기실에 외부 빗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우수관은 있는데 실내 물고임을 해결해줄 배수구가 없다. 세탁실은 배수구 위로 10㎝ 높이의 연통이 올라와 있어 세탁기 호스를 그 위에 꽂아야 한다. 아래로 휘어진 호스 안에 물이 고일 수밖에 없는 데다 호스가 빠지기라도 하면 물바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공사 관계자는 “실외기실은 ‘건식’이 건축 추세고, 세탁실은 악취 등을 고려해 배수구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1군 브랜드’ 건설사 관계자는 “수도꼭지가 있으면 물이 빠지는 배수구를 확보하는 게 건축의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미리 시정할 수 있는 사전점검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 공동주택은 입주 45일 전 사전점검을 해야 하지만 이 단지는 더 임박해서야 진행했다. 이후 사용승인을 내준 중구청 측은 “감리보고서 등에 현격한 문제가 없었고 외벽구조 균열이나 설계도면과 다른 중대한 하자가 접수되지 않아 허가했다”며 선을 그었다.
시행사와 시공사 측은 13일 국민일보에 “4층 사생활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며 “보수작업 진행 후 보상도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