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 3000원’에 입소문… 가게는 “‘착한’ 간판 떼고 싶다”

입력 2023-04-14 04:08

대학생 김태연(26)씨는 일주일에 3~4번씩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청년밥상문간’을 찾는다. 점심 한 끼 가격이 1만원을 넘나드는 요즘에도 이곳에선 3000원에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 밥은 무제한 제공이다. 김씨는 13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가격이 저렴한 식당을 찾다가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며 “강의가 있는 날에는 꼭 한 끼는 이 식당에서 먹는다”고 했다. 청년밥상문간은 물가안정 모범업소인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된 곳이다.

고공행진 중인 밥상 물가에 착한가격업소를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전국 대학가에서 확산 중인 ‘천원의 아침밥’ 사업처럼 착한가격업소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모습이다.

착한가격업소는 소비자에게 저렴한 값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으로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인증한 곳이다. 서울의 경우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되면 종량제봉투나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제공하고, 수도요금도 감면해주고 있다. ‘착한가격’이라고 쓰여 있는 파란색 인증 스티커도 제공된다.

이날 오후 착한가격업소인 서울 마포구 ‘참맛닭곰탕’에서 만난 조현석(60)씨도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여길 온다고 했다. 이곳은 닭곰탕을 6000원에 제공한다. 조씨는 “이 식당 가격을 알려주면 친구들이 놀란다. 요즘 이 가격에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했다. 늦은 점심시간에도 손님들이 꽤 많았다. 사장 한성호(58)씨는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보다 손님이 더 많아졌다. 물가가 치솟다 보니 (손님들이) 평소보다 여길 더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옷가게를 운영 중인 한모(66)씨는 지인들과 ‘착한가격업소’ 목록을 공유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공유 목록 중 한 곳인 ‘따뜻한밥상’을 찾았다. 2021년 11월 문을 연 이곳 역시 3000원에 김치찌개를 제공한다. 한씨는 “가격만 보고 왔는데 맛도 좋다. 가게 근처라 자주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서울에 등록된 착한가격업소는 834개다. 2019년 825개, 2020년 843개, 2021년 842개로 코로나19 등 악조건 속에서도 수치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착한가격업소도 고물가 시대의 어려움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여러 식당 주인들이 “버티기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입을 모았다. 손님 수는 이전보다 늘었지만, 현실적으로 비용 상승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 착한가격업소 사장은 “고물가에 재료값, 전기요금, 인건비 등 모든 면에서 비용이 상승했다. 손님이 늘어도 비용 상승분은 이를 훨씬 추월한다”고 토로했다.

몇몇 업소는 착한가격업소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고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 강서구의 A중국집 착한가격업소 인증을 떼고 물가상승률에 맞춰 가격을 올렸다. A중국집 사장은 “이젠 우리 가게는 착한가격업소와는 관련 없는 곳”이라며 씁쓸해했다.

백재연 기자, 이현성 인턴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