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통신칩 업체 퀄컴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휴대전화 제조사에 부당계약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부과받은 1조원대 과징금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3일 퀄컴과 계열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다. 공정위가 퀄컴의 불공정 행위를 제재한 지 6년여 만이다. 퀄컴은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통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하고 있는데, 특허 이용을 원하는 사업자에게 SEP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 조건으로 제공하겠다”며 국제표준화기구에 확약해 독점보유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삼성·인텔 등 경쟁 칩셋 사가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거부하거나 판매처를 제한하는 등 ‘특허 갑질’을 했다.
공정위는 퀄컴이 시장 지배력을 토대로 칩셋 공급을 볼모 삼아 휴대전화 제조사와의 계약도 일방적 조건으로 체결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시정명령과 함께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 1조311억원을 물렸다. 퀄컴은 불복해 소송을 냈는데, 원심 재판부는 2019년 “시정명령 10건 중 8건이 적법하고 과징금도 정당하다”며 공정위 손을 들어줬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점, 휴대전화 제조사에 불이익한 거래를 강제한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타당성 없는 조건 제시 행위, 불이익 강제행위 등이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어렵게 만드는 행위로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기준을 재확인 및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대법 판결에 대해 “관련 시장에서 폐쇄적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독점적 행위가 법에 어긋난다는 걸 분명히 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이어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확장하려 반경쟁적 사업구조를 구축한 것이 위법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공정위는 시정명령에 대한 이행 점검도 철저히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