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육아휴직’과 ‘학부모’의 오류

입력 2023-04-14 04:07

첫아이 출산 직전 나는 36시간 동안 누워 있어야만 했다. 통증은 거의 없었는데 돌아다니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별다른 신체적 고통 없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그뿐이라 그렇기도 하고, 생각이라도 해야 견딜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누워서 ‘기사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여기까지 쓰고 잠깐 스스로에게 실소를 보냈다.) 대형병원 산부인과 응급실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기사였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터라 임신부와 산모, 그 보호자의 인권이 병원에서 어떻게 묵살되는지에 대해 머릿속으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옆 병상 임신부, 앞 병상 임신부 보호자, 오가는 의료 인력들이 전부 취재원이었으니 제법 괜찮은 취재 환경이었다.

“무사히 아이를 딱 낳고 나면, 회사에 전화해야지. 출산휴가 중이지만 기사 하나만 쓰겠다고 보고해야겠다. 자연분만 하면 벌떡 일어나서 미역국 두 그릇 먹고 두어 시간 정도 기사 쓰는 게 무리는 아니겠지.”

이런 턱도 없는 망상은 이틀이 채 지나기 전에 와장창 깨졌다. 아침에 애 낳고 벌떡 일어나 점심에 밭매러 갔다는 할머니들 이야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팩트였다면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태였는지 절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저 농촌 전설 같은 이야기에 홀려서 출산 직후 기사 쓸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출산 ‘휴가(休暇)’ 또는 육아 ‘휴직(休職)’이라는 용어가 망상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휴가도 휴직도 틀린 말은 아니다. 휴가는 ‘쉴 틈’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휴직은 ‘일을 쉰다’는 뜻이다. 출산해서 쉬어야 하고, 휴직 기간 일을 쉬는 것 자체는 맞는 말이다. 문제는 ‘쉬다(休)’라는 단어가 쉽사리 오인된다는 데 있다. 출산한 뒤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고, 육아하면서 업무를 하지 않으면 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잘못된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쉼’이 없는데도 ‘휴가’나 ‘휴직’이라니까, 되게 한가한 느낌이 드는 게 문제다. 출산 뒤 온전한 휴식 따위는 불가능한 일이고 (초면인 신생아를 돌봐야 한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퇴근 없는 육아 출근의 나날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용어인 것이다. 당사자조차 쉴 수 있다고 오해하게 만드는 용어의 오류를 체감하면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라는 표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지만 언젠가는 훌륭한 대안이 나타나길 바란다.

훌륭한 대안이 등장한 영역도 있다. 최근 학교사회에서 ‘학부모(學父母)’의 자리가 ‘보호자(保護者)’로 대체되고 있다. ‘학부모’는 양친이 함께 사는 걸 ‘기본’으로 규정짓는다. 가족 양상이 다양해지는데도 ‘부모’가 있어야만 온전한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편부·편모 가정, 조손 가정 아이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룹홈이나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살뜰히 돌봐주는 보호자의 설 자리를 옹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상 범주를 편협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보호자’라는 용어는 관점도 바꿔준다. 미성년자인 학생에 대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어른이라면 모름지기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해준다. 학부모는 ‘학(學)’에 초점을 맞춘다면, 보호자는 ‘보호’에 무게중심을 두게 한다. 학업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보호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떠올리게 해주는 이 표현이 더욱 널리 쓰이길 바란다. 용어 하나가 가치관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