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내에서 9번째 엠폭스 확진자가 나왔다. 지난해 6월 발생한 후 5번째 환자까지는 해외여행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다 6~9번째 환자는 지역사회 감염 사례로 알려지면서 확산 우려가 커졌다. 당국은 이날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높였다.
엠폭스의 원래 명칭은 원숭이두창이다. 1958년 덴마크의 한 실험실 영장류에서 발견된 원숭이두창은 아프리카에서 주로 나타나는 발열, 발진성 질환이다. 지난해 5월 세계에 확산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름 때문인지 브라질에서 원숭이 10여마리가 독살됐다. 동성 간 성관계가 감염 통로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성소수자가 비난 대상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1월 차별을 유발한다며 명칭을 엠폭스로 바꿨다.
명칭 논란이 가장 커진 건 코로나19다. 중국 우한에서 최초 확진자가 나와 처음에는 우한 혹은 중국 폐렴(바이러스)으로 불렸다. WHO가 특정 국가 혐오 방지 차원에서 코로나19로 통일했다. 변이 바이러스 명칭도 그리스어 알파벳 순으로 알파, 베타, 감마로 나가다 ‘크시’ 차례에서 ‘오미크론’이 선정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철자가 같기 때문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에볼라, 라임, 메르스 등 발생지를 딴 질환이 많은데 유독 코로나만 중국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명칭의 억울함으로 따지면 스페인독감만 한 게 없다. 전 세계에서 최대 1억명 정도가 사망한 스페인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미국에서 첫 환자가 보고됐고 유럽 등에 퍼졌다. 참전국들은 언론을 통제한 반면 중립국인 스페인 언론이 독감 유행을 자세히 보도했다. 스페인에서 감기 소식을 계속 듣게 되자 병명이 ‘스페인독감’으로 굳어졌다. 스페인으로선 땅을 칠 노릇이지만 익숙해진 이름은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질병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명칭 사용을 너무 제한해선 안된다는 주장도 있으나 높아진 인권 감수성을 거스르기도 쉽지 않다. 질병명보다 중요한 건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개인과 당국의 노력임은 분명하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