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중에 있던 아이들과 수차례 작별 인사를 한 뒤엔 주치의였던 산부인과 의사가 그러더군요. 산모로서 확신이 들어도 아직은 임신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요. 제가 상처받을까 싶어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일 텐데도 속은 좀 상했습니다. 그렇게 기적 같이 찾아온 아이인데 불안장애를 겪으면서 또 다른 진통을 겪어야 했지요.”
경력단절녀,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 반복되는 유산, 노산으로 어렵게 얻은 아이에게 찾아온 장애까지. 무엇 하나 순탄치 못했던 과정을 지나온 출산과 육아였다. 하지만 눈물과 아픔으로만 기억될 줄 알았던 과정은 다른 이들의 아픔을 줄여줄 수 있는 마중물이 됐다. 이진영(48) 진원온원(Gene1:1) 대표가 고백하는 30~40대 시절 이야기다.
그가 이끄는 진원온원은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유익균의 다양성을 높이고 식단 운동 수면 보조제 등에 개인 맞춤 생활 습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서비스의 모태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 대표는 “불안장애로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던 내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연구하다 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솔루션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회사를 창업할 계획은 아니었다. 분자유전체 전공자로서 과기부와 보건복지부 등 국가기관의 연구개발 기획과 바이오의학 사업 개발 업무를 맡으며 20~30대 시절을 보낸 이 대표는 어렵게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단절됐던 전공 분야를 살리게 됐다.
“아이가 네 살 되던 해 겨울, 동네 병원에서 진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상황이 악화돼 급성 임파선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어요. 퇴원 후에도 아토피 증상, 급성 장염 등 전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났고 불안장애까지 겹쳤습니다. 유치원에서마저 보육의 어려움을 호소하게 되면서 제가 유치원 무료 보조교사로 출근해 아이를 일대일로 돌봐야 했어요.”
아이의 회복을 위해 전공 분야를 살려 밤낮없이 논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이언스’지에 실렸던 내용에 시선이 꽂혔다. 장내 미생물이 항암효과를 갖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회복 솔루션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인체 유전자는 바꾸기 어렵고 부작용 위험도 크지만 장내 미생물을 변화시켜 활용하는 ‘마이크로바이옴’(몸 안에 사는 미생물과 생태계를 합친 말)은 부작용 없이 인체를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의 장내 미생물을 추출해 분석한 뒤 유익균을 활성화하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찾아 섭취하고 식단관리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의 불안장애가 완화된 모습에 유치원 선생님들이 어떤 치료를 한 거냐며 물어올 정도였다.
발달장애를 비롯해 유아기에 예민한 반응과 공격성이 두드러져 고민하는 부모들과 온라인 카페에서 활발하게 교제를 나눠오던 이 대표는 2019년 창업의 문을 두드렸다.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해 회복시킬 수 있는 일대일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진원온원’이란 이름을 걸었다. 명칭은 창세기 1장 1절(Genesis 1:1)을 뜻하기도 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의 유전자를 연구하겠다는 의미다.
회사 홈페이지 첫 화면엔 ‘하나님의 위대함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떳떳하지 않은 일은 행하지 않는다’는 실천 강령도 눈에 띈다.
진원온원의 주력 서비스는 장과 뇌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과 균형을 맞춰주는 ‘마이 세컨드 브레인’이다. 임신기 산모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관리해주고 출산 후에는 엄마와 아기에게 맞는 컨설팅도 제공한다. 바이오정보기반 큐레이션 서비스의 선구적인 스타트업으로 인정받아 창업 5개월 만에 ‘여성창업경진대회 기술지식 분야 최우수상(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제2의 뇌로 불리는 장은 뇌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우울증 발달장애 알츠하이머 등 신경정신과 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 장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으려는 연구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며 “맞춤형 케어 솔루션을 제공해 장 건강을 회복하고 많은 이들이 늘어난 수명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쌀누룩 발아현미 동충하초 치아시드 등을 활용해 건강한 효소를 담은 음료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쌀을 도정하고 침지(浸漬)시켜 찌고 식히는 일련의 과정은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이 대표는 “같은 원료와 조건이더라도 얼마나 진득하게 발효 과정을 들여다보고 연구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효소가 결과물로 나올지 결정된다”며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정성이 기술을 이긴다’는 걸 느낀다”며 웃었다.
그가 창업 초기부터 사용하던 노트북 자판 아래엔 메모지 위에 손글씨로 쓴 성경 구절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 대표는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보면 인간적인 열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열매를 기대했던 시기가 꽤 길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고 인간의 기대를 내려놨을 때 부어주시는 은혜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런 가치관을 꾸준히 지속해나가는 기업으로 진원온원을 이끌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