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켄야(65)는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지’(MUJI·무인양품)의 총괄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디자인의 눈으로 사회와 시대를 예민하게 읽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저서 대부분이 국내에 소개됐고 ‘디자인의 디자인’ ‘내일의 디자인’ 등은 디자인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하라 켄야는 새 책 ‘저공비행’에서 로컬이라는 주제를 펼친다.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로컬 담론을 국가와 문명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대담한 관점이 돋보인다.
그는 로컬을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업 입국 이후 비전으로, 자국 문화는 내팽겨쳐 두고 철저하게 서양화로 방향키를 전환한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 미래 자원으로, 관광의 새로운 차원으로 파악한다.
“유동의 21세기 중반을 향해 일본에 주어진 과제는 지금껏 쌓아온 문화와 전통이 단지 향수를 부르는 용도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 땅이 가진 매력을 파손하지 않고 끌어내 미래 감각으로 운용해나가는 것이다.”
이 문장은 책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다. 하라 켄야는 “미래의 소재는 오래된 재료다” “풍토야말로 자원이다” “일본열도는 팩토리(factory·공장)로 개조되었다” “서양에 대한 심취는 한 때면 충분했다” “글로벌한 문화라는 것은 없다. 문화는 그곳에만 있는 고유성 그 자체다” 같은 통찰을 통해 자신만의 로컬론을 구성한다.
이어 호텔 디자인을 통해 이론을 구체적으로 전개한다. 호텔은 “그것이 서 있는 풍토와 전통, 식문화의 가장 좋은 해석”이며 “지역에 잠재된 자연을 음미하고 해석한 뒤 이를 건축을 통해 방문객에게 선명하고 인상 깊게 표현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하라 켄야는 일본의 현대적 호텔들에서 미국과 유럽 문명이 최고라는 착각, 모더니즘에의 경도, 자기 풍토와 전통에 대한 망각,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시 등을 읽어낸다. “이른바 서양식을 요령 있게 수준 높게 익혀서 보여주는 것이 일본의 고급 호텔에 주어진 사명이고 전제였다.”
이같은 비판은 호텔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오늘, 어쩌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오늘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하라 켄야는 일본의 호텔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핵심은 로컬이다. 풍토와 전통을 품고 있는 로컬리티를 끌어내고 현대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자연을 두려워하는 자세’ ‘안과 밖의 소통’ ‘물과 온천’ ‘돌을 두다’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제안 역시 호텔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미래 비전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