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대의 K푸드] 폭발적 글로벌 인기 ‘K매운라면’… 그 비결은 ‘맵부심’과 ‘챌린지’

입력 2023-04-15 04:03
최근 전세계에선 ‘K’ 열풍이 거세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는 빌보드를 정복했고, 오징어게임·더 글로리 등 드라마는 전세계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기생충은 칸과 오스카를 휩쓸었다.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콘텐츠에서 시작된 K컬처의 글로벌 영향력은 이제 K푸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우 스테이크를 곁들인 짜파구리와 언양 미나리 밀쌈, 디저트는 달고나 타르트. 지난 주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2030년 월드엑스포’ 개최 후보지인 부산을 실사할 때 유치위원회 측에서 식탁 위에 올린 메뉴들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아셨겠지만 가히 ‘K콘텐츠’ 메뉴라 할 만하다. 짜파구리는 영화 ‘기생충’에서 등장해 화제가 됐던 음식이고, 미나리는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인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채소로 부각된 바 있으며, 달고나 역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한국 디저트다.

특히 실사단장은 짜파구리의 작은 면발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메뉴마다 “나이스”를 연발하며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5박6일 간의 실사 후 한국을 떠나며 그들이 남긴 찬사 ‘어메이징 부산’(Amazing Busan) 속에는 분명 한국의 콘텐츠와 문화, 그 중 우리 한식과 맛에 대한 경험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이처럼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 인기 덕에 음식 한류가 덕을 보는 경우도 많지만 ‘K푸드’ 자체가 한류를 알리는 콘텐츠로 역할을 하는 사례 또한 낯설지 않다. 당장 유튜브 검색창에 ‘Korean Food’, ‘Kimchi’, ‘Korean Noodle’ 등 영어로 관련 단어들을 입력해보면 해외의 크리에이터들이 한국 음식을 만들고 먹어보는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을 금세 살펴볼 수 있다. 참고로 유튜브와 같은 창작가들의 동영상 플랫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조회를 보이는 주요 장르에 키즈 콘텐츠,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또 이 음식을 인기 장르로 부각시킨 공신 중 하나는 한국의 유튜버들의 독창적 콘텐츠 ‘먹방’이다. 대체 불가능한 단어 ‘mukbang’은 유튜브에서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다.

‘먹방’의 종주국이니만큼 한국의 ‘K푸드’는 이 장르에서 전세계적으로도 선호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중 놀라울 정도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콘텐츠들은 제목 또는 태그에 ‘challenge’가 붙는다.

우리 음식으로 외국인들이 시식 경쟁을 하는 것. 단연, 으뜸은 ‘Korean spicy noodle challenge’다. 이미 알고 있었고 익숙하다 생각하겠지만 억대 조회수가 넘친다. ‘한국 매운 라면 먹어보기 도전’이라는 신종 콘텐츠 장르에 본격적으로 레드카펫을 깔아준 것은 삼양라면의 ‘불닭볶음면’이다. 출시된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지만 이 라면이 국내외 해외에서 주목을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역시 유튜브와 SNS에서 매운맛 마니아들로부터 시작해 퍼져 나간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제품이 출시돼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인기다.

개발자가 밝힌 이 라면의 소스 구성은 청양고추와 멕시코의 하바네로, 베트남 고추 여기에 치킨과 카레 원료 그리고 회사의 노하우를 지닌 비법 간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운 맛을 측정하는 단위인 스코빌 지수로 따지면 이 라면의 수치는 4400 SHU 정도다. 참고로 역시 한국 매운 라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농심의 ‘신라면’이 2700 SHU 수준이니 불닭볶음면의 시제품이 나왔을 때 반응은 당연히 호불호가 갈렸다. 당시 우리나라 자영업계에 불어오던 ‘매운 불닭집’ 열풍에서 착안한 식품이었지만 라면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너무 매운 맛에 초기 반응이 너무 없어서 지속 생산 여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중고물품 사이트에서 마니아들 간에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 회사 측은 일단 단종을 미루고 정규 판매를 결정한다. 그리곤 별도의 광고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틈새시장을 노린 제품으로 포지션을 한 제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마니아들이 스스로 SNS와 블로그 등에 이 특별한 맛에 대한 후기를 올리면서 서서히 데워지다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이성재씨가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에 치즈, 삼각김밥을 넣어 혼밥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그야말로 불이 붙는다. 여기에 유튜버 ‘영국남자’에서 해외인들에게 불닭볶음면을 먹어보게 하는 영상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전세계적인 ‘Korean spicy noodle challenge’의 역사가 시작된다.

여기서 한번 살펴보고 갈 부분이 있다. 이 라면의 전 세계적 인기는 스프 소스, 즉 제조사의 노하우일까, 아니면 한국인의 매운맛을 좋아하는 DNA 때문일까. 혹은 마침 불어온 세계적 매운맛 열풍이 운 좋게 맞아 떨어진 것일까. SNS와 유튜브의 힘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종합적이다. 그래도 이 K푸드를 만든 곳이 한국이니 우리부터 한번 들여다보자. 세계라면협회(WINA)의 2021년 발표에 따르면 2013년부터 8년 연속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는 한국이다. 한 사람이 1년에 75개를 먹는 것이다. 전 국민이 일주일에 한 개 반은 무조건 먹는 것. 그만큼 자주 먹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K라면의 스프에는 당연히 매운맛의 주인공인 고추가 들어있다. 안 그래도 매운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고 거기에 고추장찌개를 떠먹는 민족이니 한국인의 고추 사랑, 일명 ‘맵부심’은 대단하다.

태양이 뜨겁거나 고기를 많이 먹는 지역의 국가들, 태국과 인도 중국의 사천 그리고 멕시코 등 매운 맛을 즐기는 나라는 매우 많다. 불닭볶음면 해외 먹방을 보면 유럽 등 서양 사람들이 많이 사 먹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 라면의 판매량은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다. 그 다음이 미국이다. 결국 불닭볶음면의 해외 인기는 우리처럼 매운 맛을 좋아하는 아시아 국가에서의 소비라는 것이다.

미국이 그 다음인 것 역시 인구 분포를 봐야 한다. 전세계 고추 생산 및 소비량의 상위를 차치하고, 가장 매운 고추로 유명한 하바네로의 고장인 멕시코. 미국에는 멕시코계 이주민들의 비중이 높다. 즉, 해외에서 잘 팔려 나가는 것도 매운 맛에 익숙한 사람들이 먹는 것이다.

반면 매운 맛에 익숙지 않은 유럽지역의 판매 비중은 적다. 유럽 요리에서 매운 맛은 음식의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맛의 포인트를 주는 용도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맛을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4가지로 분류하는데 비해 우리와 동양은 매운맛까지 포함해서 5미(味)로 표현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매운 맛을 통증으로 생각해서 맛의 체계에 넣지 않지만 우리는 그 매운 맛을 맛의 체계에 넣은 결과가 현재의 한국식 매운 맛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SNS와 유튜브에서 이어진 일명 ‘챌린지’가 결정적이었다. 다른 맛들과 달리 매운맛은 일종의 전체적 측정이 가능하다. 스코빌 지수가 한 몫을 해준 셈인데 단맛이나 다른 맛들은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 이러다보니 이 ‘챌린지’가 유튜브와 SNS에서 일종의 놀이처럼 번지면서 글로벌 효자 수출품이 된 것이다.

자, 그럼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 만들 때 고추를 애호할까. 레시피 부문 국내 최대 이용자를 보유한 앱 ‘만개의 레시피’의 빅데이터를 통해 알아봤다. 지난 10년(2013년 3월 1일~2023년 3월 31일)간 이용자들이 업로드한 레시피의 총개수는 18만5000개다. 이중 식재료에 ‘고추’가 들어간 총 레시피는 5만5023개로 약 30%다. 음식 셋 중 하나는 고추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빨간 고추와 이들이 함께해 식탁 위에 올려지는 저녁은 상상만으로 벌써 침이 고인다.

한국만의 매운맛, 즉 발효된 매운 맛을 내는 김치나 매운맛에 단맛을 더하는 고추장 등 우리의 매운맛 문화는 분명 대단히 훌륭한 음식 문화다. 다만 스트레스 속에 톡 쏘는 캡사이신이 주는 감성은 요리의 모든 맛을 덮는 단점이 있다. 더 깊고 다양한 맛의 전통을 가진 우리의 K푸드를 다른 재료들로도 살펴볼 시점이다.

이희대 만개의레시피 전략본부장 겸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