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파일만 3만개… 불법 정치자금 의혹 던진 ‘판도라의 폰’

입력 2023-04-13 04:06
검찰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의원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윤 의원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불법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현규 기자

‘돈 봉투 의혹’이 불거진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는 ‘1강’ 후보가 없는 접전 상황이었다는 게 정치권 평가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특정 후보 당선을 목적으로 한 ‘실탄’이 광범위하게 뿌려졌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수사 단초를 제공한 건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였다. ‘민주당 사법리스크’의 시작점이었던 이 전 부총장은 10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12일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지난해 8~9월 이 전 부총장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휴대전화 녹음파일 속에서 돈 봉투 의혹의 주요 단서를 포착했다.

녹음파일 중에는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이 2021년 5월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전 부총장에게 “봉투 10개를 윤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는 취지로 말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거머쥔 후보는 송영길 전 대표였다. 송 전 대표는 취임 후 자신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윤관석 의원을 당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이날 윤 의원과 함께 압수수색을 받은 이성만 의원도 인천 부평이 지역구로, 전당대회 당시 송 전 대표를 도왔다. 이번 의혹에 함께 등장하는 강 회장과 이 전 부총장 역시 선거 지원을 했다.

돈 봉투가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 등에게 뿌려졌는지도 주요 규명 대상이다. 당시 전당대회는 당일까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다. 송 전 대표는 홍영표 의원에게 권리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에 밀렸지만, 대의원 투표·일반당원 여론조사에서 앞서면서 0.59% 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다. 검찰은 유권자들에게 돈이 흘러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돈 봉투 외에 다른 금품 제공 경로가 있었는지도 함께 확인 중이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 속에 담긴 범죄 단서를 확인하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그가 모친 집에 숨겨뒀던 휴대전화 여러 대에서는 3만개가 넘는 녹음파일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6000만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노웅래 의원 사건, 이학영 의원 등이 연루 의혹을 받는 한국복합물류 취업 특혜 의혹 또한 녹음파일에서 단서가 나왔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녹음파일 중에서도 신속한 확인이 필요한 부분부터 압수수색 등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확대에 따라 최근에는 수사팀 인력도 대폭 늘렸다.

이 전 부총장은 이날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그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1년6개월, 알선수재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검찰 구형인 징역 3년보다 훨씬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이 전 부총장은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각종 청탁 명목으로 9억4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당시 집권여당이자 다수당이던 민주당의 서울 서초갑 지역위원장, 사무부총장 등 고위 당직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치자금과 알선 대가로 10억원에 이르는 금품을 수수했다”고 지적했다.

임주언 박재현 양한주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