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에 물도 뿌려보고 안간힘을 썼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물을 뿌리다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물러섰는데 잠시 후 LPG 가스통이 펑펑 소리를 내고 터지면서 눈앞에서 펜션이 하나둘씩 폭삭 주저앉았어요.”
12일 강원도 강릉시 저동 펜션단지에서 만난 전모(35)씨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전날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전씨는 “산불이 너무 크게 나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불붙은 솔방울들이 수류탄처럼 산에서 날아와 펜션에 불을 붙였고, 펜션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전씨는 5년 전 나무를 주재료로 건물 4동을 지은 뒤 ‘하얀우드’라는 이름을 붙여 펜션을 운영해 왔다. 전날 강릉에서 난 산불은 하얀우드를 포함해 모두 30여채 펜션을 불태웠다. 그는 “이제 막 단골도 생기고 손님이 모이기 시작하던 참이었다”며 “하루아침에 집과 생업을 모두 잃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나는 아직 젊어서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다른 펜션 사장님들은 모두 연세가 많아서 재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펜션단지가 산불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현동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신모(76)씨는 산불로 불탄 건물에서 잿더미가 된 5만원권 뭉치를 발견하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금고 속에는 뭉칫돈 외에도 통장과 각종 증서가 가득했지만 모두 검게 타버리고 말았다. 그는 특히 5개월가량 장사를 포기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가 곧 단장을 마칠 예정이었지만, 화마는 건물과 함께 그 꿈도 태워버리고 말았다.
강릉 산불 이재민들은 전날 강릉아이스아레나로 대피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 이재민들은 임시대피소를 떠나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안현동 주민 70대 배모씨는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느냐. 불이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60대 함모씨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집을 보며 “지금 남아 있는 건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전부”라며 “이제 어떻게 사느냐”고 말했다.
산불은 경포 주변의 울창한 송림(松林)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2000년 동해안 대형 산불은 물론 1998년과 2002년 등 경포지역 산불에도 커다란 피해 없이 꿋꿋하게 울창함을 자랑해 왔던 소나무숲은 이번 산불로 초토화됐다. 이곳은 대관령 금강소나무숲과 함께 강릉의 관광자원이었다. 시민 박모(62)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죽은 나무를 벌채하고 민둥산처럼 변해갈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전날 발생한 강릉 산불로 1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재민은 292명이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