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납치된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사 송환 위해 기도해주세요”

입력 2023-04-15 03:01
그래픽=신민식

남북 교류가 끊기고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소외 어린이, 산모 등을 돕는 교회와 선교단체들의 은밀한 활동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소속 선교사들은 북한 보육원과 경로당 등에 빵 국수 이유식 생활필수품 등을 전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이 같은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북한체제 탈북자 정치범수용소 기독교 성경 등과 연계되면 단속을 강화하면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선교사들은 전한다. 선교사 중엔 이런 활동을 하다가 검거돼 억류 상태에 있거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어 한국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요구된다.

23년간 생사 모르는 김동식 선교사
김동식 목사의 부인 주양선 선교사가 14일 서울 강서구 경향교회에서 과거 남편과 함께 펼친 탈북자를 위한 삶과 신앙을 회고하고 있다.

중국에서 북한 주민을 돕다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된 김동식 선교사가 대표적이다. 김 선교사의 부인 주양선(75·미국 시카고 예동침례교회) 선교사와 가족은 14일 서울 강서구 경향교회(석기현 목사)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주 선교사는 “납치된 남편 이야기를 하려니 눈물부터 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소식이 끊긴 지 2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남편의 건강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살아있다는 소식만이라도 확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에서 남편이 석방돼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혹시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면 유해라도 송환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는 “남편과 함께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을 도운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더 작은 자, 탈북자를 돕다 납북된 남편이 자랑스럽다. 천국에서라도 다시 볼 것”이라며 “북한의 복음 통일과 열악한 주민을 위해 늘 남편과 함께 기도했다. 하루빨리 남북한이 평화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의 처남 정세국(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교육분과위원장) 인천제일장로교회 장로는 “북한 당국이 그들 주민을 헌신적으로 도와온 김 선교사를 억류한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북한이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런 식으로 대우한다면 누가 북한을 도우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선교사는 중국 옌지(延吉)에서 장애인과 탈북자를 지원하고 선교 활동을 하다가 2000년 1월 북한 공작원과 조선족 공범들에게 납치됐다. 그 길로 북한으로 끌려간 김 선교사는 사상 전향을 거부해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6·25납북피해자대책위원회, 선민네트워크 등 국내 기독교계 단체들은 김 선교사 석방과 유해송환, 억류자들의 생사 확인 등을 촉구해왔다. 이들은 6·25 납북피해자 보상법을 비롯해 관련법을 제정해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원통함을 푸는 데 힘쓰고 있다.

선교사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
북한에 억류된 크리스천들. 왼쪽부터 김동식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북한선교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김동식 목사 순교 기념사업회’ 결성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개최했다. 다음 달 중 출범 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기념사업회 출범을 준비하는 김동식목사유해송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김규호 목사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는 못 할지라도 순교자를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선교와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와 성도의 동참을 호소했다.

기독교계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김 선교사를 포함해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한국 국적의 탈북민 김원호 함진우 고현철 선교사, 조선족 장만석 선교사 등 기독교인 10명 이상이 강제 억류돼 있다.

이들의 행방이나 생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선교사들은 모두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돕던 선량한 사역자들이었다. 이들 대부분 중국 등에서 탈북자 쉼터를 운영하며 탈북자와 조선족 등을 돌보는 사역을 감당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중앙 소속 김국기 선교사는 국내에서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돌봤다. 그러다 2003년 북한선교를 위해 중국 단둥으로 파송돼 탈북민과 꽃제비 등 북한 주민을 위한 탈북자 쉼터를 운영했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식사하고 잠을 잤으며 한국 등으로 떠날 때는 여비와 생필품을 지원받았다.

김 선교사는 동갑내기 부인 김희순 사모와 함께 북한의 농업과 가정을 지원했다. 농기계와 발전기, 제빵 기계 등을 소외 가정에 전달했다. 의약품과 의류를 컨테이너에 실어 북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선교 활동 중에 2015년 6월 간첩죄와 국가전복 음모죄 등 혐의를 적용받아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8년째 억류 중이다.

예장 합동중앙 총회는 “김 선교사는 단둥에서 탈북자 쉼터를 운영하며 탈북자와 꽃제비, 조선족들을 돌본 선교사로서 간첩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이러한 조치는 국제관례는 물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도주의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갑문 예장 합동중앙 전 총회장도 “수년 전 김 선교사가 한국에 잠시 왔을 때 서울영광교회에서 선교 활동 보고를 했다”며 “이후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연락도 끊겼다. 남을 돕는 것을 천직으로 여긴 그를 간첩으로 억류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조속히 선교사들을 석방해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이들의 무사 송환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2013년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는 2007년부터 부인과 함께 단둥에서 2∼3곳의 쉼터를 운영하면서 소규모 국수 공장을 운영했다. 그는 중국을 찾은 북한 주민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공부를 했다. 김 선교사는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 국수나 의약품, 생활필수품 등과 여비를 챙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8월 석방된 임현수 캐나다 큰빛교회 원로목사도 1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해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해왔다. 당시 함께 억류됐던 평양과기대 김상덕 교수와 직원 김학송씨도 북한 청소년을 위해 헌신하던 봉사자들이었다.

북한 인권 중시하는 윤석열정부, 억류자 석방에도 힘써야
25개 기독교계 및 시민단체들이 2015년 3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북한 당국이 억류하고 있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국민일보DB

북한선교 전문가들은 이들 선교사의 헌신적인 북한 주민 돕기 활동에도 북한 당국은 간첩 혐의 등을 씌워 억류하고 있는 것은 비인권적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한국교회를 비롯해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를 통해 지속적인 도움을 받아온 북한으로서는 배은망덕한 일이라는 것이다.

조기연 북한선교연구원장은 “그동안 정부는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억류자 가족 간 서신 교환과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북한은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북한이 유인과 납치를 통해 강제 억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다. 북한의 주장대로 억류자가 자국법을 어긴 범죄자라면 응당 변호인 접견권과 가족 면회, 서신 교환을 허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북청년 단체인 비전유니피케이션 김진성 대표도 “북한 당국의 반인권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윤석열정부가 전 정부보다 더 열심히 북한 억류자 석방을 위해 노력함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정부임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을 천명한다”고 말했다.

북한순교자기념관장 김영일 목사는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았다. 유엔 미국 한국이 협력해 북한 억류자들이 속히 본국으로 송환되도록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글·사진=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