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간지풍’ 탄 화마, 강릉을 할퀴다

입력 2023-04-12 04:08
강원도 강릉시에서 11일 발생한 대형 산불로 저동 경포호 인근 펜션들이 불에 탄 채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화한 산불은 태풍급 강풍을 타고 경포호까지 급속히 확산해 막대한 피해를 냈다. 산림당국은 경포호 일대 펜션 30여채가 불에 탄 것으로 잠정집계했다. 뉴시스

강원도 강릉시에서 11일 오전 발생한 산불이 태풍급 강풍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해 축구장 면적 530배에 달하는 산림, 주택·펜션 90여채를 태우고 8시간 만에 진화됐다. 80대 주민 1명도 숨졌다. 산불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진화됐으나 역대급으로 강한 바람 탓에 막대한 피해를 냈다.

산불은 이날 오전 8시 22분쯤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했다. 강풍으로 소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덮쳤고 전선에서 발생한 불꽃이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커졌다. 산불 현장 인근에선 오전 시속 136㎞로 불어닥친 봄철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강한 바람)’ 영향을 받아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영동 전역에는 건조 및 강풍 경보가 함께 내려졌다.

소방청은 최고 대응수위인 소방대응 3단계,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발령하고 진화 인력을 총동원했다. 산불로 소방대응 3단계가 발령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오전에는 8000ℓ급 초대형 진화헬기가 이륙했으나 그 직후 강풍으로 공중진화를 포기하고 철수했다. 화선(火線)이 한때 8.8㎞에 달하면서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들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국은 오후 2시 30분쯤에야 바람이 잦아들자 진화헬기를 투입했다. 마침 바람이 잦아들고 거센 소나기가 내린 덕에 산림당국은 오후 4시 30분쯤 주불을 진화했다. 산불 진화에는 헬기 4대를 비롯해 장비 400여대, 진화대원 등 2700여명이 투입됐다.

이번 산불로 전소된 펜션에선 80대 남성이 숨진채 발견됐다. 주민 14명과 소방대원 2명도 연기흡입, 화상,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다. 또 축구장 면적(0.714㏊)의 530배에 이르는 산림 379㏊가 잿더미로 변했다. 주택 59채, 펜션 33채, 호텔 3곳, 상가 2곳, 차량 1대, 교회시설 1곳도 전소되거나 일부 탄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산불로 도 유형문화재 50호 방해정(放海亭) 일부가 소실되고, 경포호 주변 정자인 상영정(觴詠亭)이 전소됐다. 경포동과 산대월리, 산포리 일대 주민 수백명과 인근 리조트 및 호텔 투숙객 700여명도 대피했다. 인근 학교들은 단축수업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산불 영향이 우려되는 지역의 주민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선제적으로 방화선을 구축하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우선 조치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재산 피해를 더 확실하게 조사해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되도록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발화 원인을 조사 중이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