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헬기 발 묶인 이유는 ‘양간지풍’

입력 2023-04-12 04:08
11일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로 경포호 주변의 상영정이 산불에 휩싸여 있다. 이 정자는 결국 무너졌다. 연합뉴스

강원도 강릉에서 11일 발생한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했지만 산림 당국은 8000ℓ급 초대형 산불진화헬기를 운영하지 못했다. 헬기의 발이 묶이면서 산불 피해는 강릉 경포 일원으로 급격하게 확산했다.

진화헬기의 발목을 잡고 산불이 순식간에 퍼지게 한 원인은 태풍급의 강한 바람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이다. 양간지풍은 봄철 남고북저형 기압 배치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고온건조해지고 속도는 빨라진다. 동해안 지역은 매년 3~5월 초속 20~30m가 넘는 양간지풍이 불어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지는 일이 되풀이된다. 이날 산불 현장에는 순간 최대풍속 초속 30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3월 강원도 강릉·동해 산불도 양간지풍이 원인이었다. 2000년 동해안 산불과 2005년 양양 낙산사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 2019년 고성·속초·강릉·동해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 역시 양간지풍이 피해를 키웠다.

양간지풍은 산불을 매우 빠르게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 불똥이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도 일으켜 진화에 어려움을 더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실험 결과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화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수십∼수백m 건너까지 불씨를 옮기는 까닭에 산불 진화에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기도 한다.

강릉 산불 현장에 빼곡하게 심어진 소나무도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다. 침엽수인 소나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송진은 연료 역할을 한다. 솔방울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큰불로 커지는 주범이 된다.

강릉=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