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초등학생 배승아양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대낮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가해자는 운전대를 잡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고 만취 상태로 도심 한복판을 달리다 사고를 냈다. 참변이 일어난 다음 날인 지난 9일, 40대 가장도 음주 차량에 희생됐다. 아들 셋을 둔 장애 5등급 아버지였다. 몸도 불편한데 오토바이로 떡볶이 배달에 나선 길, 중앙선을 침범한 음주 차량이 그를 덮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시 최소 징역 3년,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벌하도록 한 ‘윤창호법’이 시행 중이지만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음주운전 재범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와 음주운전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음주 재범률은 2019년 43.8%에서 2021년 44.8%로 오히려 늘었다.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예방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음주운전 전력자의 차량에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술을 마시고 차량에 오르면 아예 시동이 켜지지 않아 원천적으로 음주운전을 막을 수 있다. 장치에 숨을 불어 넣으면 경고음이 울리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에선 음주운전 범죄 전력이 있거나 안전운전이 각별히 필요한 통학버스 운전자 등에게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남편도 지난해 음주운전에 적발돼 벌금(약 220만원)과 함께 장치 설치 명령을 받았다. 미국에선 50개 주 중 36개 주에 도입됐는데 음주운전 사망자 수를 19%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우리도 국회에 관련 법안이 5개나 계류 중이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18대부터 21대 국회까지 매번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10년 넘게 시동잠금장치 설치 대상자 범위와 250만원 정도인 설치 비용의 부담 주체에 대한 논의만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에선 음주운전 유죄 판결을 받으면 운전 금지 또는 시동잠금장치 설치 중 하나를 반드시 해야 한다.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더 이상 비극적인 사고는 없어야 한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