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26) 내 인생은 믿음의 삶… 하나님 은혜로 지금까지 인도

입력 2023-04-13 03:04
원응두 원로장로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겪은 일 등을 기록한 영농일지.

시신기증서약을 하기 전까진 솔직히 막연했었다. 이전까지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지금까지 여러 유명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죽음에 대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내가 죽는다면 시신을 기증하자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죽어서라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육체가 유용하게 쓰인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온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지금까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질병으로 많은 아픔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업을 한다고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세상이 말하는 실패를 여러 번 경험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속기도 했고 배신도 당했다. 세상적인 물질과 풍요를 마음껏 가져 보지도 못했다. 늘 궁핍하게 살았다. 그래도 오늘까지 잘 살아왔다. 몸은 쇠하여 가지만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그 은혜로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그 열매들을 기대하는 믿음이 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 나이 이제 89세다. 제주 중문 마을에선 손꼽을 만큼 나이든 축에 들어간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 짧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고통스러웠던 일, 숨 막히도록 괴로웠던 일이 있었고 반면 기쁘고 행복했던 날들도 많았다. 마침 이렇게 지면을 통해 지나온 내 모습을 뒤돌아보게 해준 국민일보에 감사를 드린다.

원고를 쓰면서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그저 부끄러운 마음이다. 마치 어제 일인 듯하다. 하나님을 알고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께서 인도하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나의 삶은 어쩌면 믿음의 삶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미숙한 점도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 비록 가진 것은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차고 넘친 것 같다. 그래도 자녀들이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아직도 건강한 몸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사람을 믿는 편이다. 어떤 때는 그것이 내게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사람으로 실망도 하고 좌절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모든 사람이 나를 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하게 믿는 것은 그런 사람에 대한 믿음을 통해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믿고 나름대로 일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런 믿음이 깨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에 실패하면서 빚에 내몰리자 채권자들이 집을 찾아와 돈을 달라며 욕하고 협박하고 달려들 때는 정말 힘들었다. 특히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돈을 갚으라고 재촉할 때는 정말 괴로웠다. 도망도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잘 이겨내 여기까지 왔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