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엔씨소프트는 카카오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를 사유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카카오게임즈에서 서비스하는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의 시스템을 베꼈다는 이유다. 아키에이지 워는 지난달 21일 출시 당시부터 비즈니스 모델(BM), 이용자 인터페이스 등이 리니지2M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제보가 게이머와 인플루언서 사이에서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에선 아키에이지 워와 리니지2M가 플레이화면, 아이템 상점 등이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이 와중에 몇몇 게이머들은 “한국은 원래 리니지 라이크 뿐이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계에선 ‘성공 보증 수표’나 다름없는 리니지의 주요 특징을 그대로 차용한 게임 출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비슷한 게임, 하루이틀 문제 아니야
‘리니지 라이크’란 엔씨소프트에서 개발한 게임 리니지의 주요 특성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게임을 말한다. 이용자간 전투(PvP)의 활성화, 아이템 및 레벨에 따른 극명한 전투력 차이 등이 주된 특징이다. 적자생존의 생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강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유료 상품에 대한 이용자들의 구매력은 상당히 높다. 이런 특성이 자연히 게임의 높은 매출로 연결되는 셈이다. 판타지 세계관과 유럽의 중세 시대 양식이 등장하는 것도 흡사하다. 아키에이지 워 외에도 ‘오딘’ ‘R2M’ 등 숱한 국내산 게임에 이 같은 특성은 고스란히 담겼다.
안전한 수익모델을 따라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산업계 전체로 놓고 보면 긍정적이지 않다.
윤태진 연세대 교수겸 게임과학연구위원장은 “(리니지 라이크가) 결국 가장 안전한 BM이라 그렇다”며 “매출은 30~40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게이머의 분포는 20대가 가장 많다. 매출을 신경써야 하는 게임사 입장에선 특정 소비층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의준 건국대 교수는 “게임 산업은 경쟁이 치열해 새로운 도전이 어려운 문화가 있다”며 “다만 세계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대안을 찾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로 과도기”라고 말했다.
창의성 없는 개발… 도전정신 회복을
지난달 열린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 시상식에서 국내 게임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며 고전했다. ‘올해의 게임상’을 받은 ‘엘든링’은 국내에선 아직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소울라이크 장르다. 소울라이크란 게임 개발사 프롬소프웨어에서 제작한 명작 어드벤처 게임 ‘다크 소울’의 진행 방식과 조작을 계승한 게임을 말한다. 이 외에도 고양이의 탐험을 그린 블루트웰브스튜디오의 인디 게임 ‘스트레이’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 매출액은 역대 최고치인 20조9913억원을 기록했다.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시장 규모다. 몸집은 제법 커진 상태인데, 정작 튼튼한 다리가 없어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안전한 길을 가다보면 창의성이 떨어지게 된다”며 “원작과 비슷한 게임은 결국 원작만 밀어주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대학생과 중고생의 인디 게임 제작을 지원하는 등 게임에 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며 “학부모 관점에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들지 않게끔 게임사에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솔 인턴기자 s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