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이 ℓ 당 1600원을 넘어서면서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이 추가 감산에 돌입하는 다음 달이면 가격 오름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정부는 세수 감소 우려가 커지자 1년 6개월 넘게 시행 중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끝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되면 휘발유 판매 가격은 단번에 ℓ 당 200원가량 뛰어오른다. 자칫 ℓ 당 2000원 시대가 오면서 겨우 안정을 찾은 물가상승률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기준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ℓ 당 1620.69원을 기록했다. 지난 5일 ℓ 당 1604.38원을 기록하며 1600원을 넘어선 뒤 5일째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가는 산유국 모임인 오펙 플러스(OPEC+)가 지난 2일 추가 감산 조치를 시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들썩이고 있다. OPEC+는 지난해 10월 일일 생산량 200만 배럴 감산을 발표하며 올해도 이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가 갑작스레 추가 감산을 선언했다. 이 여파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한국에 수입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3일 기준 배럴 당 84.10달러를 기록하며 전날(78.08달러/배럴)보다 6.02달러 급등했다.
문제는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OPEC+는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일일 생산량을 50만 배럴 추가 감산할 계획이다. 직접적으로 공급 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국제유가는 심리적 우려가 반영된 현재보다 더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국내 휘발유 판매 가격 상승 요인이 커지는 것이다.
정부가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유류세 탄력세율 한시적 인하 조치를 어떻게 손 볼 지도 변수다. 정부는 2021년 11월 유류세 탄력세율을 한시적으로 20% 인하한 뒤 지난해 하반기에는 인하폭을 37%까지 끌어올렸다. 덕분에 지난해 하반기의 경우 ℓ 당 304원에 달하는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 이후 시행 시기를 이달까지 4개월 연장하면서 휘발유 유류세율 인하폭을 25%로 낮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ℓ 당 205원 가격 인하 효과가 유지되고 있다. 이 조치가 종료되면 휘발유 판매 가격은 단번에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달 4.2%를 기록하며 2개월 연속 상승폭이 둔화한 물가상승률을 다시 높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제유가 인상 요인이 있다고 해도 유류세 인하 조치를 더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 시행으로 감소한 교통·에너지·환경세수는 지난해 기준 5조5000억원에 달한다. 경기 침체로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은 올해 상황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이제 겨우 4%대에 진입한 물가상승률이 유가 상승 여파로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시적 인하 조치 종료 이후 운용 방향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