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신흥국들의 금 매입량이 증가한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들은 안전자산인 금을 대피소로 활용하고 있다.
10일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 한 해동안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사들인 금은 1136t에 달했다. 이는 1967년 이후 55년 만에 최대치다. 직전연도 매입 규모(450t)의 배 이상이었다. 매입 금액은 약 700억 달러(약 92조원)였다.
WGC 발표 결과 가장 많은 금을 사들인 국가는 148t을 사들인 튀르키예 중앙은행이었다. 튀르키예의 공식 금 보유량은 542t으로 역대 최고치다. 다음으로 많이 사들인 국가는 중국(62t)이며 이집트(47t), 카타르(35t), 이라크·우즈베키스탄(34t), 아랍에미리트(25t) 등이었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 이유는 지난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등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면서 러시아 외화 표시 자산이 동결됐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년 간 100만온스 가량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와 이란은 서방 제재를 피해 국경 간 거래를 하기 위한 금 기반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계획중이기도 하다”며 “러시아와 경제적 교류가 많은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금 보유 유인이 상존할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우려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중단 가능성도 금 투자 매력을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컸던 지난해 하반기에 금을 집중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각 중앙은행으로 흡수된 금은 862t이었다.
중국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최근 5개월 연속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3월 말 기준 2068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공격적인 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도 지난 1월 역대 두 번째 규모로 금 매입에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싱가포르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을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이에 WGC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높은 인플레이션 등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올 들어 금값이 고공행진 하면서 지난해 매입 물량을 늘린 중앙은행들은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금테크에서 동떨어져 있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2013년 2월 이후 10년 째 104.4t에 머물고 있다. 한은은 지난 2011~2013년 당시 금값 하락으로 금 투자 실패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