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전우원씨가 일가 비자금 의혹 폭로에 나선 가운데 현행 추징금 환수 제도의 법적 공백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행법상 전 전 대통령처럼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추징금의 추가 집행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범죄자의 해외 도주나 사망으로 재판이 불가능한 사건 등의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독립몰수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내란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2205억원 추징금 확정판결을 받고 현재까지 1283억원을 추징당했다. 922억원이 미납된 상황인데 최근 법원 판결로 추가 환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지난 7일 교보자산신탁이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낸 공매대금 배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땅을 팔아 추징금으로 내는 것을 둘러싼 행정 소송에서 정부 측이 승소한 것이다.
이번 소송 대상은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차명 부동산으로 보고 지난 2013년 8월 압류했던 경기도 오산시 땅 5필지 중 3필지(약 55억원)다. 판결이 확정되면 검찰은 추가로 55억원을 환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한 상태라 이번 55억원 환수가 사실상 마지막 환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 사망 전 독립몰수제 입법이 완료됐더라면 판결 금액은 환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독립몰수제가 시행 중이다. 독일은 형법에 ‘기소나 유죄판결이 없어도 몰수 요건을 갖추면 몰수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유죄판결에 근거하지 않은 몰수를 인정한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지난 3일 대검을 방문한 라자 쿠마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의장을 접견하며 독립몰수제 의무화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검찰 내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다 국외로 도피한 뒤 사망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범죄수익도 환수되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는 독립몰수제 도입을 위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개정하는 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전 전 대통령 사망 후에도 미납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전두환 재산추징 3법’도 국회 계류 중이다. 다만 법안들이 통과돼도 전 전 대통령 사례에 소급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무죄추정 원칙 등 이유로 입법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행법은 몰수가 형벌 규정이라 유죄 판결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며 “독립몰수제가 도입되면 유죄 판결 전 선제적으로 범죄수익을 몰수 처분해 범죄자들의 수익 현실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