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국가부채 규모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일반정부 부채(D2)’ 총액보다 국가부채 총액이 1000조원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래에 지출될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4개월 만에 1000조원 이상 왔다갔다하는 부채 규모에 국민들은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확장적 재정을 추구했던 문재인정부에서 일었던 국가부채 축소 논란이 재정건정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는 뻥튀기 논란으로 방향만 바꿔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066조 VS 2326조
9일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 4일 발표된 ‘2022 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상 국가부채 총액은 2326조2000억원이었다. 반면 지난해 12월 기재부가 발표한 ‘2021년도 일반정부 부채(D2)’는 1066조2000억원으로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차이는 연금충당부채로 대표되는 비확정부채의 포함 여부에서 비롯됐다. 국가결산에서 정한 재무제표상 부채는 중앙정부의 국공채 등 확정부채와 연금충당부채 등 비확정부채를 합쳐서 계산한다. 이에 비해 D2는 중앙정부 부채에 지방정부 부채와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더할 뿐 비확정부채를 포함하지 않는다. 향후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금을 추산한 금액인 연금충당부채의 규모는 지난해 1181억3000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재무제표상 부채와 D2 부채 사이에 배 이상 규모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2011년 이전까지 정부는 전통적 세입·세출 계산서인 국가채무(D1)만을 발표해 왔다. D1은 정부의 회계·기금에 국한되는 가장 좁은 의미의 부채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가부채를 더 실질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었다. 이에 정부는 2011년도 분부터 D1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D2, 그리고 D2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더한 공공부문 부채(D3)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연금충당부채 등 장래의 잠재적인 부채 부담을 포함한 국가재무제표상 부채도 이때부터 세간에 공개됐다.
이후로 기재부는 매년 4월쯤 전년도 국가재무제표상 국가부채를 발표하고, 12월에는 전년도 D2와 D3를 공개해 왔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각의 회계기준에 맞춰 발표할 뿐 어느 한쪽에 특별히 더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며 “둘 중 특별히 강조하는 부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규모의 두 가지 부채가 공존하다 보니 이에 대한 해석은 정치적 신념에 따라 정반대로 나뉘기 일쑤다.
정권마다 강조하는 부채 달라
문재인정부 시절에는 정부가 국가 채무를 축소한다는 문제 제기가 줄을 이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국가 지출이 늘어나 국가부채가 2000조원에 육박했는데, 정부는 D1이나 D2를 근거로 국가 재정이 건전하다고 강변했다. 기재부는 “재무제표상 부채는 나랏빚이 아니다”라며 수차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반대로 현 정부에서는 ‘정부가 의도를 갖고 재정 적자를 뻥튀기했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5일 논평을 내고 “(정부가) 과장된 국가부채를 근거로 재정준칙 도입 분위기를 조장한다”며 의도적으로 연금충당부채를 부각해 국가 파산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입장이 갈리는 것은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연금충당부채는 실질적인 채무가 아니라서 재정여력과 직결되지 않고, 그 내역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액수 자체에 주목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국제 재정 상황을 비교할 때 사용하는 회계기준이 D2인데, 2021년 한국의 D2 기준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51.5%로 여전히 OECD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는 것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부채를 걱정하더라도 적절한 수준으로 해야 한다”며 “2300조원이라는 숫자에 시선이 팔리는 사이에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지점들은 놓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326조원조차 실제 부채의 일부밖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반대의 지적도 있다. 현재 연금충당부채 추산에 반영되는 연금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뿐이다. 정부는 공무원·군인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국가가 고용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민연금을 연금충당부채에서 배제하고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도 결국 돈이 비면 그만큼을 나라가 갚아줘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연금충당부채에서 적립금을 뺀 금액) 역시 실질적으로는 연금충당부채로 국가부채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위원이 추정하는 현재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 규모는 약 1550조원이다. 정부는 연금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규모 산정을 두고 논의했지만 관련 위원회에서 동의를 이루지 못했다. 윤 위원 같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분까지 합칠 경우 실질적인 국가부채는 4000조원 내외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부채 규모를 둔 혼선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기재부 등 관계 부처들은 현재의 회계 제도를 계속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무제표상 부채와 D2 부채 모두 회계 기준을 따라 작성하고 있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충실히 설명해 왔다”며 “별도의 제도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