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24)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믿음의 끈 놓지 않은 육남매

입력 2023-04-11 03:04
1980년 원응두 원로장로 부부와 2남 4녀 자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뒷줄 오른쪽 교복 입은 학생이 당시 제주제일고 재학 중이던 원희룡 현 국토교통부 장관.

돌아보면 시련도 많았지만 6남매 모두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 큰아들 원희종 제주하영교회 담임목사는 서울에서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을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고 목회를 할 수 없을 수도 있었는데 무릎 수술만 받고 건강을 회복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둘째 아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대 재학 시절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4년에는 대학 동기 4명과 함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오거리에서 노학연대 데모를 위한 유인물을 나누어 주다가 경찰에 붙잡혀 구속 위기를 맞기도 했다. 구로공단의 한 교회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했다. 또 인천 금속공장 등지에서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하루 일당 2900원을 받으며 살아갔다.

이런 운동의 결과로 희룡은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세상이 야속하고 원망도 들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때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들을 믿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신앙은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아들은 복학하고 졸업까지 했다. 늦었지만 사법시험도 보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바라기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시기하고 질투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공직자의 길은 늘 가시밭길 같다.

제주 도지사 시절 얘기다. 제주도에는 한라산신제라는 행사가 있다. 이 행사를 할 때 도지사가 ‘초헌관’이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제단에 첫 잔을 올리고 절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원 지사는 절을 하지 않고 부지사에게 맡겨 그 제사를 치르게 했다. 이것 때문에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잘 견뎌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큰딸 진희도 학창 시절 작은 오빠와 마찬가지로 운동권 학생이었다. 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현장에 있을 정도였다. 늦게 의사 남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진희는 2008년 18대 총선 서울 양천구 갑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빠를 돕다가 뇌경색이 와, 수술하고 반신마비 상태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차츰 경과가 좋아져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병중에 있으면서 당한 아픔을 생각하면 아비로서 마음이 쓰리다. 건강하게 지내길 바랄 뿐이다.

나머지 세 딸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아비로서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해 늘 가슴이 아팠다. 자식 향한 모든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자녀들이 그저 건강하게 지내며 하는 일들이 잘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열매다. 부모는 자녀가 좋은 열매가 되도록 밑거름을 잘 줘야 한다. 그 길은 오직 기도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기도한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들로 온전히 세워지기를 말이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