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나 죽은 뒤

입력 2023-04-06 18:23 수정 2023-04-06 21:51

순례에 올랐다
가장 추운 날
적막한 빈집에
큰 못 하나 질러 놓고
헐벗은 등에
눈에 밟히는 손자 한번 업어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업어 보고
북망산 칠성판 판판마다
떠도는
나는 나는 나는

못대가리가 없는 별
못대가리가 꺾인 별
못대가리가 둥글넓적한 별
못대가리가 길쭉한 별
못대가리가 양 끝에 둘인 별

이 모두가
나 죽은 뒤 나로 살아갈 놈들이라니

-‘김종철 시선집’ 중

2014년 작고한 ‘못의 시인’ 김종철이 쓴 이 시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며 죽음을 묘사한 탁월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빈 집에 “큰 못 하나 질러놓고” 순례에 오르는 것, 마지막으로 “손자 한 번 업어보고” “어머니도 업어 보고”, 못대가리 닮은 별들이 되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