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욕 도마뱀 사진까지… 어이없는 결과보고서

입력 2023-04-07 04:07
충남 공주시의회 의원 7명이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로 3박5일 출장을 다녀온 뒤 결과보고서에 첨부한 ‘일광욕 중인 도마뱀’.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서 캡처

지방의회에서 외유성 출장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행정안전부는 ‘결과보고서 공개’ ‘습득한 지식의 활용 방안 강구 등 사후관리 강화’ 등의 개선책을 내놨다. 행안부는 구체적으로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규칙 표준안에서 결과보고서를 출장 배경, 주요업무수행사항, 주요 내용요지 및 향후 활용방안 등을 ‘논문 형식’으로 작성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국민일보가 전국 243개 지방의회에서 공개한 결과보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보고서의 수준은 처참했다. 관광 중 단순 소감을 적거나 검색으로 몇 분 만에 찾아낼법한 관련 정보를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 보고서가 많았다.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커다란 도마뱀이었다.” 충남 공주시의회의 말레이시아 해외연수 결과보고서에 ‘일광욕 중인 도마뱀’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과 함께 적힌 내용의 일부다.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하는 관광지 ‘시티갤러리’에 대해선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방문객이 인증사진을 가장 많이 남기는 장소”라는 설명과 함께 실제 대표 조형물 앞에서 출장자들이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찍은 단체 사진을 첨부했다.

공주시의회 의원들이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관광지 ‘시티갤러리’ 입구에서 하트를 그린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서 캡처

공주시의회는 해당 연수 목적으로 “문화관광 자원에 대한 선진사례 견학, 도시개발 우수사례 방문”을 내세웠지만 이 같은 보고서를 보면 연수 내용과 목적이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당초 연수목적에 있던 ‘타국 의회와의 교류’도 해당 지역 사정으로 취소돼 진행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3박5일 일정으로 진행된 연수에는 1인당 163만원씩 총 3253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관광정책 견학’을 내세워 출장을 다녀온 뒤 외유성이란 비판이 일 것을 의식한 듯 결과보고서에선 관련 내용을 빼놓은 사례도 발견됐다. 경기도 고양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8명은 지난해 10월 21일부터 5박8일 일정으로 그리스를 다녀왔다. 주요 관광지 15곳을 둘러보는 데 4218만원의 예산이 투입된 출장이다.

결과보고서에는 주요 일정에 포함된 7개 관광지 내용이 누락됐다. 시의회 관계자는 “막상 가보니 방문 내용이나 시사점을 적기가 어려워 보고서에선 빠지게 됐다”고 해명했다. 보고에서 빠진 관광지 중 한 곳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한 아테네 아라호바 마을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시의회 관계자는 “드라마 팬인 A의원이 그 (아라호바) 마을에 가니 너무 좋아 팔팔 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단순 여행 후기 수준의 결과보고서는 전국 지방의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충남 아산시의회 시의원 3명은 지난 2월 10박12일 일정으로 호주로 출장을 다녀왔다. 호주의 복지, 문화, 관광 정책 등을 경험하고 국내 적용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내세워 경비 1800만원을 들여 출장길에 올랐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물론이고, 캠핑카까지 대여해 유명 온천과 해안도로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충남 아산시의회 의원 3명이 지난해 2월 9일 호주의 관광명소인 페닌슐라 온천에서 몸을 담근 채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서 캡처

결과보고서에는 천연 야외온천인 페닌슐라 온천 방문과 관련해 “온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수풀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는 소감과 함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양손으로 브이(V)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을 첨부했다. 이 밖에도 관광 수준의 출장 내용이 공개되며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이들은 외유성 출장이 아니었다고 해명에 나섰다. 출장을 다녀온 시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온천 방문은 시의회 연구모임인 ‘온천관광 연구회’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헌 이강민 김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