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NHK 때려부수는 TV

입력 2023-04-07 04:10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한 달 수신료는 가장 저렴한 옵션이 1137엔(약 1만1400원)이다. KBS 시청료가 2500원이니 4배가 넘는다. NHK에는 광고가 전혀 없어 광고 수입 비중이 17%인 KBS와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훨씬 비싼 건 분명하다. 공영방송의 원조인 영국 BBC는 연 159파운드(약 26만9400원)를 받는다. 한 달에 13.25파운드(약 2만1700원)로 KBS보다 8.6배 많다. 독일의 공영방송 수신료는 월 18.36유로(약 2만2600원)인데, 집에 TV나 라디오가 없어도 무조건 내야 한다.

TV 수신료 징수는 1946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1923년 무선전신법을 만들어 징수한 라디오 수신료를 TV로 확장하고, 그 돈으로 국민 모두 방송을 볼 수 있는 공영방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광고로 운영되는 상업방송과 정부가 장악한 국영방송 사이에서 새 모델을 찾은 것이다. 그러고는 정부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하되 공공성을 담보한다는 까다로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품격을 지키면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뉴스, 시청률과 제작비에 연연하지 않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마음껏 생산할 수 있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이 공영방송 시스템을 신속히 만들며 영국의 방식을 따라 나선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TV 시대가 저물면서 공영방송의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콘텐츠 유통의 왕이라는 자리를 PC와 스마트폰에 빼앗긴 게 발단이었다. 플랫폼 독점이 흔들리니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우월적 지위도 유지하기 힘들게 됐다. 공영방송이 있는 나라마다 “TV를 안 보는데 수신료를 왜 내는가”라는 의문이 쏟아진다. 유럽 각국이 수신료를 없앴고, 아직 남은 나라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최근 일본에서 지상파 방송 수신장치를 제거한 ‘NHK 때려부수는 TV’가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공영방송인 NHK를 볼 수 없으니 TV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건 그대로 두고 시청료만 올리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