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이 잠정 보류된 가운데 최근 한국전력의 회사채(한전채) 발행이 증가하면서 회사채 시장 유동성을 ‘블랙홀’처럼 흡수할 것이라는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향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대외 요인이 겹칠 경우 지난해 말 나타났던 채권시장 경색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5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한전채 발행잔액은 64조3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월 말(39조3600억원)에 비해 63.5% 급증했다.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 규모도 여전히 크다. 1분기 한전채 순발행액은 7조8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조5200억원)보다 28.3% 증가했다. 월별로 보면 1월 2조8100억원, 2월 2조4600억원, 3월 1조8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전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급증한 적자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한전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영향 때문이다. 지난해 한전은 32조66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6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특히 4분기 영업적자는 분기 사상 최초로 10조원을 웃돌았다. 여기에 최근 금리가 크게 하락하면서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 발행량이 다시 늘면 한전채는 회사채 시장의 자금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지방정부의 지방채가 부도나면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벌어지자 채권시장은 급격히 무너졌다. 특히 신용등급이 높은 한전채와 은행채가 고금리로 시장에 풀리면서 일반 기업의 회사채에 대한 수요는 실종됐다. 이에 회사채 순발행액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회사채 시장이 다소 온기를 찾은 상황이지만 한전채 발행 규모 증가는 위기 발생 시 잠재적 자금경색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부동산 PF 부실화가 대표적인 회사채 시장 불안 요인으로 남아있다. 한전 적자 구조의 근본적 해결책은 전기요금 정상화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말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한전채 발행 규모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3개월 만에 이를 뒤집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전기요금 인상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는 6월 말과 9월 말 두 차례 남았지만 여름과 겨울에 전기요금 관련 부담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남은 분기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요금 인상이 미뤄지면 한전은 당분간 회사채 발행에 의존해야 한다.
여기에 향후 부동산 PF 부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면 한전채는 또다시 ‘구축 효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PF 리스크가 불거지면 채권시장이 마비된다”며 “꾸준히 발행돼야 하는 한전채의 금리가 높아지면 회사채는 또다시 금리 이점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회사채 시장이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