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공부 열심히 해 목표했던 교육대학교에 무난히 입학했다. 그런데 한마음교회 생활관에 들어가 공동체 생활과 대학생활을 겪으며 전혀 다른 내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관계가 어그러지면 자주 짜증을 내고 옳고 그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말씀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결단을 하면서도 불쑥 돌출되는 내적 갈등에 ‘왜 사람이 변하지 않는가?’ 하시는 목사님 말씀이 더해져 마음은 늘 무거웠다. 교회의 많은 분들이 주님 앞에 굴복하는 것을 보며 신앙의 위기는 더 커졌고, 나도 그들처럼 주님 앞에 굴복하여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혼을 생각할 즈음 한 형제가 눈에 들어왔다. 안정되고 원만한 성격과 기복 없는 신앙심에 끌려 결혼을 했고, 평소 채워지지 않던 마음의 빈자리를 남편에게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빗나갔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에 우아한 음식과 깜짝 이벤트의 감격을 기대했지만 남편은 단지 날짜만 기억할 뿐이었다. 바쁜 회사일로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애써 양보를 했지만 섭섭함은 숨길 수 없었다. 따뜻한 대화로 철늦은 애교를 떨어도 과묵한 성격 탓인지 한참 듣다가 그냥 ‘어!’ ‘그랬군.’ 하는 게 끝이었다. 시간 개념도 거의 없었다. 결국 목소리는 높아지고 시작된 잔소리는 싸움으로 번졌다.
그렇다고 매사가 눈엣가시는 아니었다. 쓰레기 버리는 것은 알아서 전담했고, 틈만 나면 설거지도 잘 했다. 반찬 투정도 하지 않고, 가자미눈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겐 모든 것이 2% 부족하여 짜증만 났다. 화살은 자주 아이들로 향해 내 계획표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너, 맞을래? 엄마 지금 기분 나쁘거든? 똑바로 해.” 했다. “넌 왜 맨날 불평이고 짜증이냐?”는 친정아버지의 말씀에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지만 내 마음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도 샜다.
그런 어느 날 카풀로 출퇴근을 하던 친구에게 학교에서 열 받은 일을 얘기하는 중에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할 말이 있다고 하며 멈칫거렸다. “무슨 말이든 상관없어. 그냥 이야기해 줘.” 했더니 “정희야! 예전의 정희는 이렇지 않았어. 그런데 요즘 널 보면 네가 변한건지 원래 모습이 그런지 잘 모르겠어.” 순간, 멍해지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아니야.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야. 그런데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 흐느껴 우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너 맘대로 주인 되어 산 결과가 바로 이거야.” 하시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늘 2% 부족하다며 힘들어 한 것은 모두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결과였다. 결혼생활도, 아이들 관리도, 직장에서도 내 기준대로 움직였던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정말 고마워! 널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 모두 내가 주인으로 산 결과야!” 친구는 그 말에 당황해하며 내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지식이었던 부활을 실제가 되게 해 주셨다. 교사용 지도서에 쓰인 4대 성인인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이 정확해지고, 부활하기 전 제자들의 고백과 부활하신 후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의 고백 차이를 선명하게 비춰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온 마음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예수님을 만난 감격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출근 운전대를 잡고 “마땅합니다. 마땅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이 마땅합니다. 제가 주님의 모든 말씀에 ‘아멘’하며 영광 돌립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모두 ‘아멘’입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리 교회에서 만든 찬양을 온 맘으로 고백하곤 했다. 복음이 희뿌연 안개와 같아 늘 혼자 입안에만 물고 있다가 아쉽게 삼켰는데 복음과 사명이 확실하니 입술을 열어 이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공동체 가족들과 버스에서 어느 할머니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술에 취한 할아버지가 옆에서 계속 방해를 했다. 하지만 타오르는 사명의 불꽃을 꺼뜨릴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8살 아들이 “엄마는 좋겠다. 핍박 받아서. 하늘에 상급이 더 크잖아.” 했고, 남편도 엄지척 하며 “좋아. 좋아. 아주 잘했어!” 하는데 해일보다 더 큰 행복이 밀려왔다.
이 땅과 영원한 나라가 선명해지니 내 인생, 내 자녀, 내 돈이 누구의 것인지 정확히 보인다. 어둠인 이 땅에서 내가 달려야 할 새 길 앞에는 오직 영혼을 살리는 사명만 있음을 새록새록 인지한다. 어느새 중·고등학생으로 자란 아이들에게 “경제가 여유롭지 않아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는데 괜찮니?” 했더니 놀랍게 예수님 한 분 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과 부모님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2% 부족하다는 생각을 200% 넘치게 채워주신 하나님! 불평과 짜증이 일상이 되어 엄동설한 같던 가슴을 따뜻한 벽난로 같은 사랑으로 덮어주신 주님과 동행하는 나날은 천국이다. 대학생 때부터 봉사하는 교회 찬양팀에서 이 기쁜 마음을 담아 더 신나게 드럼을 치며 꼭 잡은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정희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