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동생들의 학습교육권에 인성지도권까지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아 세 여동생에겐 호랑이 왕언니였다. 언젠가 ‘언니가 학교 다녀올 때까지 문제집 이만큼 다 풀어 놔’ 하고 말하고 하교 후 현관에 들어서니 동생들이 후다닥 방으로 숨었다. “얘들아, 얼른 문 열고 나와라” 해도 반응이 없어 교복 치마를 입은 채 4층 가스 배관을 타고 옆방 창문으로 들어가 버릇을 싹 고쳐놓았다.
아버지 사업이 잘되어 대형 아파트에서 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삶을 누리며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사업이 중단되며 집안은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했다. 툭하면 학교 행정실에 불려가 수업료 독촉을 받았고 냉혹한 한파가 몰아쳤다. 때맞춰 동생들의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둘째는 한 맺힌 아이같이 독해져갔고 셋째를 찾아 강력반 형사가 된 부모님은 전국을 무대로 잠복근무를 하며 빨강머리를 찾아 액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추격전을 벌였다. 하지만 초등학생 막내는 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여자 축구선수로 자신의 운동이나 진로 걱정보다 집안 걱정을 먼저 했고, 축구화가 닳아도 숨기고 선배들에게 물려받아 신었다.
동생들 체크를 위해 훔쳐본 일기장엔 ‘수업료가 밀려서 오늘 또 행정실에 불려갔다. 준비물을 못 사 선생님께 혼이 났다. 수학 여행비를 어떻게 말하지? 돈 때문에 창피하고 정말 죽고 싶다’는 등 온통 어두운 그림자들뿐이었다. 베개로 입을 막고 엉엉 울며 기도했다. “하나님! 교회도 잘 나가고 착하게 사는데 왜 이러나요. 하나님 살아계시는 것이 맞나요?” 결국 오래 믿었던 하나님은 의지할 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오직 내 힘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가족 몰래 길거리 좌판에서 신발을 팔고 찹쌀떡과 군고구마 장사를 했으며 정육점, 수상안전요원, 드라마 엑스트라 레크리에이션 MC, 전단지 돌리기 등 미친 듯 일했다. 행사장에서 동물 옷이나 인형 탈을 쓰고 춤을 출 땐 견딜 수 없이 더웠지만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고등학생이라 최저임금이고 시간도 부족해 가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가장 부러운 대상은 성공한 인물이 아니라 부모·형제 없는 고아였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날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릴 때,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도 항상 기쁘게 살아가는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따라 처음 한마음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밝고 행복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치부까지 솔직히 터놓으며 간증하는 그들은 분명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심한 장애도, 생사를 오갈 정도의 질병도 그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열심히 믿음 생활을 했는데 저들과 차이가 뭐지?’ 하며 고민하는데 결정적 차이점이 바로 딱 보였다. 그들은 ‘부활하신 인생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었다. 부활? 주인? 생소했던 이 말이 내 마음을 강타했다.
내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만 있었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없었다. 순간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여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셨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직접 확인해 주셨다는 말씀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믿음은 가짜였다.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그분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죄! 그 무서운 죄에 큰 충격을 받고 온몸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
내가 힘들었던 유일한 이유는 돈 없고 힘든 상황 때문이 아니라 주인을 배척하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게 되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처럼 날아가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참 자유를 누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소망의 선교지가 된 회사에서 마침 신입사원 교육 업무를 맡아 새로 만나는 사원에게 신바람 나게 교육하며 부활하신 예수님도 전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동생들 문제도 하나님께서 풀어 주셨다. 상태가 심각했던 셋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술 담배를 끊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경찰서에서 피해 여성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상담사가 되었다. 악바리같이 독했던 둘째도 예수님과 함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시작했다. 새 축구화를 사주지 못해 가슴 아팠던 막내는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그라운드를 누벼 여자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경기 전후에 선수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기도하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며 ‘귀요미 여자 축구선수’에서 ‘축구 전도사’로 알려졌다.
이후 미친 짓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오래 근무한 고액연봉의 안정적인 대기업을 퇴사하고 정말 하고 싶었던 새 일에 도전하여 사업 준비 중이다. 날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붙잡으니 현실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어떠한 염려도 없다. 내 삶엔 오직 주님이 1번일 뿐이다.
딸 부잣집 맏이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넘겨드리고 네 자매를 만나주신 주님, 그리고 동생들 모두 교회공동체에서 멋진 형제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5명의 예쁜 조카를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주께서 허락해주시는 시간 동안 작은 후회도 없이 마음껏 복음을 들고 영혼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 품에 꼭 안기고 싶다.
서영 성도